<요한 묵시록 13장> 송영진 모세 신부
미카엘과 천사들에게 패해 쫓겨난 사탄은 부하 짐승을 부르고, 이제 그 짐승에 의해 땅에서 사탄의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로마제국에 의한 박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1절-18절 : 두 짐승>
1절..<나는 또 바다에서 짐승 하나가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짐승은 뿔이 열이고 머리가 일곱이었으며, 열 개의 뿔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고 머리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붙어 있었습니다.>--<바다>--하느님의 적들이 모여 있는 곳을 말합니다. <짐승>--로마제국을 상징합니다.
<그 짐승은 뿔이 열이고>--이것은 다니엘서 7장에서 온 표현인데, '뿔'은 왕의 지배와 세 력을 상징합니다. '열 개의 뿔'에 대해서 뒤의 17장 12절에 '열 명의 임금'이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머리가 일곱이었으며>--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네 마리 짐승들의 머리수를 합하면 7개 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박해한 로마제국의 일곱 왕을 뜻한다고 뒤의 17장 9절에 설명이 나옵니다.
<열 개의 뿔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고>--여기서 '관'은 '왕관'이고, 통치권을 뜻합 니다. 그런데 새번역 성경이 왜 '작은' 관이라고 번역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원문대 로 번역하면 '왕관'입니다. '작은'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머리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붙어 있었습니다.>--이 구절은 로마의 황제들이 스스로 신이라고 자칭하면서 자신들을 신격화한 것을 뜻합니다. 스스로 신이라고 자칭하 는 것 자체가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1절에서 짐승의 모습을 묘사한 것을 전부 합하면 절대 권력을 행사하면서 교회를 박해했 던 로마제국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절..<내가 본 그 짐승은 표범 같았는데, 발은 곰의 발 같았고 입은 사자의 입 같았습니다. 용이 그 짐승에게 자기 권능과 왕좌와 큰 권한을 주었습니다.>--'표범, 곰, 사자'는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짐승들인데, 요한 묵시록 저자는 이것을 한 마리의 짐승 안에 압축시 켰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대리자이면서 정치권력을 휘두르는 존재, 즉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로마제국을 사탄의 하수인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용(사탄)이 그 짐승을 부하로 거느리면서 자신의 권능(능력)과 왕좌(지위)와 권한을 주었 다는 것은 하느님과 메시아의 관계를 흉내 낸 것입니다.
3절..<그의 머리 가운데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은 것 같았지만 그 치명적인 상처가 나았습 니다. 그러자 온 땅이 놀라워하며 그 짐승을 따랐습니다.>--사탄과 짐승은 사람들을 속 이고 유혹하기 위해서 기적처럼 보이는 일들을 행합니다. 뒤의 14절을 보면 그 짐승이 칼 을 맞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 가운데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은 것 같았다는 말은 칼을 맞고 죽을 뻔 했다는 뜻입니다. 어떻든 머리 가운데 하나가 죽은 것 같았는데 살아났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흉내 낸 것입니다. 그래서 5장 6절에서 어린양에 대해서 사용했던 '살해된'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동사를 짐승에게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앞의 2절에서 하느님과 메시아의 관계를 흉내 낸 것이나, 지금 3절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흉내 낸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탄을 숭배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은 사탄과 짐승의 의도대로 '놀라워하며' 짐승을 따르게 됩니다.
3절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도 죽지 않은 머리는 '네로' 황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 됩니다. 네로가 서기 68년에 자살한 뒤 당시 사람들은 그가 죽은 것이 아니고 동방의 파르티아로 도망갔으며 언젠가는 군대를 끌고 돌아와서 다시 집권할 것이라고 생각했습 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전설처럼 수세기 동안 계속되었고 종말에 네로가 재생한다는 '네로 재생설'로 이어졌습니다.
4절..<용이 그 짐승에게 권한을 주었으므로 사람들은 용에게 경배하였습니다. 또 짐승에 게도 경배하며, "누가 이 짐승과 같으랴? 누가 이 짐승과 싸울 수 있으랴?" 하고 말하 였습니다.>--사람들이 용과 짐승에게 경배했다는 말은 종교적인 예배 행위를 했다는 뜻 입니다. '용이 그 짐승에게 권한을 주었으므로 사람들은 용에게 경배했다.' 라는 말은 사 람들이 놀라워하면서 짐승을 따랐는데(3절) 그 짐승의 권한이 용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고, 용에게도 경배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짐승에게도 경배를 하는 것은 이미 앞의 3절에서 짐승을 따를 때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랴? 누가 이 짐승과 싸울 수 있으랴?' 라는 말은 탈출기 15장 11절 에 나오는, '주님, 신들 가운데 누가 당신과 같겠습니까?' 라는 모세의 노래를 흉내 낸 것 입니다. 하느님께 불렀던 노래를 사탄의 부하에게 부른다는 것은 하느님 모독이 극에 달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5절-6절..(5)<그 짐승에게는 또 큰소리를 치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입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마흔두 달 동안 활동할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6)<그래서 그 짐승은 입을 열어 하느님을 모독하였습니다.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거처와 하늘에 거처하는 이들을 모독하였습니다.>--그 짐승에게 큰 소리를 치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입이 주어졌고, 그래서 그 짐승이 입을 열어 하느님을 모독하고 하느님의 이름과 거처와 하늘에 거처하는 이들을 모독했다는 말은, 그 짐승에게 연설을 잘하는 능력이 주어졌고, 그 짐승은 그 능력을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에만 사용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주어졌다.' 라는 말은 그 짐승의 능력과 권한이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한계 안에 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탄도, 그 부하인 짐승도 하느님의 피조물에 지나 지 않고,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때, 심지어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그 능력을 쓸 때에도 하느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탄은 하느님과 대등한 적대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 사실을 사탄과 그 추종자들만 모르고 있습니다. '마흔 두 달'은 '삼년 반'입니다. 그 짐승이 12장에 나오는 용의 박해 기간과 같은 기간 동안 활동할 권한을 받았다는 것은 짐승의 행위와 용의 행위가 동일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 짐승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하느님께 속한 모든 것(이름, 거처, 사람)을 모독합니다.
여기서 하느님을 모독한다는 것은 스스로 신이라고 자칭하면서 하느님께 드릴 경배를 자신에게 하도록 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한다는 것은 하느님께만 적용되는 호칭들(주님, 구세주 등)을 자신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거처' 라는 말의 원문 단어는 '하느님의 장막'으로 되어 있는데, 탈출기의 '만남의 장막'에서 온 표현으로 '하느님의 성전'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거처를 모독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성전을 자신을 숭배하는 장소로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하늘에 거처하는 이들을 모독한다는 것은 이미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에 들어간 성인들과 의인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한다는 뜻입니다.
7절..<그 짐승에게는 또 성도들과 싸워 이기는 것이 허락되었고, 모든 종족과 백성과 언어와 민족을 다스리는 권한이 주어졌습니다.>--'성도들과 싸워 이기는 것이 허락되었고' 라는 말은 교회를 박해하는 것을 허락받았다는 뜻입니다. (교회 박해도 하느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인데, 하느님께서 박해를 허락하시는 것은 신자들을 단련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종족, 백성, 언어, 민족'은 전 인류를 뜻하는데 짐승에게 전 인류를 다스리는 권한이 주어졌다는 것은 이 지상에서는 그 짐승을 벗어날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종족, 백성, 언어, 민족은 5장의 어린양을 기리는 노래에서도 사용된 말들로서 어린양의 권한과 짐승의 권한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8절..<세상 창조 이래 땅의 주민들 가운데에서, 살해된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 되지 않은 자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할 것입니다.>--<세상 창조 이래>--천지창조 이래 인류는 계속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계속 참으셨습니다.
<땅의 주민들 가운데에서, 살해된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 이 구절에서 '가운데에서' 라는 말은 '곧'으로 바꿔 번역해야 합니다. '땅의 주민들, 곧 생 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우상 숭배자들, 또는 구원에서 제외된 자들, 7절에서 언급한 '성도들'이 아닌 자들입니다. ('가운데에서' 라고 번역하면 '땅의 주민들 중 일부'가 짐승에게 경배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곧'이라고 번역하면 '땅의 주민들 전부'가 짐승에게 경배하는 것이 됩니다. '땅의 주민들'과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을 같은 사람으로 볼 것인가, 다른 사람으로 볼 것인가의 차이인데 이런 것이 바로 그리스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의 어려움입니다. 여기서는 '곧'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고 새번역 성경과 공동번역 성서의 번역은 모두 잘못된 번역으로 판단됩니다.)
<생명의 책>--탈출기 32장 31절-32절에서 온 표현인데 구원받을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과는 달리 '살해된 어린양의 생명의 책'이라고 한 것은 구원이 예수님을 통해서 온다는 것, 즉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기록되지 않은'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어떤 사람의 이름은 기록하고, 어떤 사람의 이름은 기록에서 뺀 것이 아니라, 즉 처음부터 구원받을 사람들과 받지 못할 사람들의 명단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노력하기에 따라서 명단에 들어가거나 빠지거나 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7절의 '성도들'은 짐승을 경배하는 일을 거부하고 박해를 받게 되고, 8절의 '땅의 주민들, 곧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짐승을 경배합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정해진 일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어느 쪽에 설 것인가를 우리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경배할 것입니다.>--13장은 전체적으로 과거형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8절과 10절은 미래형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묵시록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느님을 섬길 것인가, 사탄을 숭배할 것인가, 선택과 결단을 촉구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미 신자가 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충실한 신자로 남아 있을 것인가, 사탄 숭배자로 변절할 것인가? 신앙생활이란 끊임없는 선택과 결단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9절..<귀 있는 사람은 들으십시오.>--이 말은 요한 묵시록이라는 책이 그저 단순히 미래의 일을 기록한 예언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훈화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전 인류와 세상의 운명은 하느님의 계획대로 되겠지만, 각 개인의 운명은 각자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10절..<사로잡혀 갈 사람은 사로잡혀 가고 칼로 죽을 사람은 칼로 죽을 것입니다.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필요한 까닭이 있습니다.>--이 구절은 예레미야서 15장 2절에서 온 것으로, 모든 일이, 심지어는 박해조차도 하느님의 계획에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각 개인의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회개를 거부하고 죽을 짓을 하는 사람은 죽을 것이지만, 회개를 하고 살 길을 찾는 사람은 살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필요한 까닭이 있습니다.>--'인내'--신자들은 박해를 받을 때 박해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보복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원수를 사랑하라,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라, 라고 하셨고, 마태오복음 26장 52절에서는 무력 사용을 금지하셨습니다. 보복은 하느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믿음'--우리가 하느님의 계획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겪더라도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인내와 믿음'이 필요한 이유는 모든 일이 다 하느님 계획에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요한 묵시록 저자의 말입니다. "믿음을 갖고 조금만 더 참고 견뎌라." 그것이 계속 강조되고 있습니다.
11절..<나는 또 땅에서 다른 짐승 하나가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짐승은 어린양처럼 뿔이 둘이었는데 용처럼 말을 하였습니다.>--첫째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왔는데, 둘째 짐승은 땅에서 올라옵니다. 땅에서 올라왔다는 것은 둘째 짐승이 첫째 짐승과는 달리 인간 세상에서 생겨난 것임을 뜻합니다. 첫째 짐승은 교회를 박해하는 정치권력을 상징했는데, 둘째 짐승은 종교권력을 상징합니다. 즉 황제숭배, 우상숭배, 거짓 예언자 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 짐승은 어린양처럼 뿔이 둘이었는데>--그 짐승은 겉으로는 어린양처럼 보였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거짓 종교가 진실한 종교로 위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쉽게 속아 넘어갈 수 있습니다.
'두 개의 뿔'은 권력을 뜻하는데 첫째 짐승의 뿔과 합하면 완전수 12가 됩니다. 따라서 둘째 짐승이 등장함으로써 첫째 짐승의 권세가 완전해집니다. 그런데 둘째 짐승에게는 '관'이 없습니다. 이것은 둘째 짐승은 첫째 짐승의 보조 역할을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용처럼 말을 하였습니다.>--이것은 교묘한 말로 사람들을 속이는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거짓 예언자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마태오복음 7장 15절에서 '양의 옷차림을 한 이리들,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라고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그대로입니다.
12절..<그리고 첫째 짐승의 모든 권한을 첫째 짐승이 보는 앞에서 행사하여, 치명상이 나은 그 첫째 짐승에게 온 땅과 땅의 주민들이 경배하게 만들었습니다.>--둘째 짐승이 하는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첫째 짐승을 종교적으로 숭배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둘째 짐승은 첫째 짐승의 권력을 물려받아서 행사하고 있습니다. '첫째 짐승이 보는 앞에서' 라는 말은 첫째 짐승에게서 임명을 받아서 권력을 대신 사용 한다는 뜻입니다. '첫째 짐승에게 온 땅의 주민들이 경배한다.' 라는 말은 황제숭배를 뜻합니다.
13절-14절..(13)<둘째 짐승은 또한 큰 표징들을 일으켰는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게도 하였습니다.> (14)<이렇게 첫째 짐승이 보는 앞에서 일으키도록 허락된 표징들을 가지고 땅의 주민들을 속였습니다. 그러면서 땅의 주민들에게, 칼을 맞고도 살아난 그 짐승의 상을 세우라고 말하였습니다.>--둘째 짐승은 거짓 기적들을 행해서 사람들을 속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마술사들이 하는 것과 같은 속임수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열광하게 됩니다.
둘째 짐승의 거짓 기적 중 하나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한 것인데 이것은 열왕기 상권 18장에서 엘리야가 했던 일입니다. 어떤 속임수로 그런 일을 했는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거짓 예언자들이 행하는 거짓 기적들에 대해서 예수님도 경고하신 적이 있습니다(마태 24,25). 또 둘째 짐승은 칼을 맞고도 살아난(치명상을 입고도 살아난) 첫째 짐승의 상을 세우게 합니다. 이것은 첫째 짐승의 우상을 세워서 숭배하게 했다는 뜻인데, 당시 로마에서 황제 상을 만들어서 신으로 섬긴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15절..<둘째 짐승에게는 첫째 짐승의 상에 숨을 불어넣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짐승의 상이 말을 하기도 하고, 자기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죽임을 당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짐승의 상에 숨을 불어넣고, 그 상이 말을 하게 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속임수입니다. 이것은 우상숭배가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짐승의 상이 자기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황제숭배가 강제로, 또 폭력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나타냅니다. 성경에서는 다니엘서 3장에서 그 예를 볼 수 있습니다. 로마 시대 순교자들은 대부분 황제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16절..<또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였습니다.>--'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는다는 것은 7장 3절에서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하느님의 인장을 찍는 것과 대립되는 것입니다. 당시 노예의 몸에 낙인을 찍었는데, 이것은 그 노예가 주인에게 속한다는 표시이므로 짐승의 낙인은 곧 사탄에게 속한다는(사탄의 노예라는) 표시가 됩니다. 이로써 세상 사람들은 '하느님의 인장을 받은 사람들'과 '사탄의 낙인을 받은 사람들', 이렇게 둘로 구분됩니다.
6장 15절에서는 사람들을 7개의 그룹으로 언급했었는데, 여기서는 '낮은 사람, 높은 사람, 부자, 가난한 자, 자유인, 종' - 6개의 그룹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6이라는 숫자는 7에서 하나 모자란 나쁜 숫자이기 때문에 이것도 사탄과 관련된 표현으로 생각됩니다.
17절..<그리하여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로 표가 찍힌 사람 말고는 아무것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였습니다.>--짐승의 낙인이 없는 사람은 경제 활동을 할 수가 없고, 결국 굶어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죽거나, 황제숭배를 하면서 살거나, 양자택일의 문제라는 것을 뜻합니다. 또 상거래를 못한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추방당한다는 뜻도 됩니다. 다른 뜻으로는 화폐 사용에 관한 뜻이 있습니다. 당시 로마 화폐에는 황제의 얼굴과 이름 이 새겨져 있었는데 세금을 바치려면 로마 화폐를 사용해야만 했고, 로마 화폐를 사용한다는 것은 로마 황제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뜻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바치라고 할 때만 해도 화폐 자체에 종교적인 성격이 없었고, 황제숭배도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 화폐 외에도 그리스 화폐도 상거래에 사용되었고, 유대인들도 자체적으로 화폐를 만들어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는 짐승의 표가 없으면 세금 납부뿐만 아니라 상거래를 일체 할 수가 없고, 황제숭배가 극에 달한 상황입니다.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18절..<여기에 지혜가 필요한 까닭이 있습니다. 지각이 있는 사람은 그 짐승을 숫자로 풀이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그 숫자는 육백육십육입니다.>--(여기서 '지각이 있는 사람'은 원문에는 '이해력이 있는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짐승을 숫자로' 라는 번역은 '짐승의 숫자를'로 바꿔야 합니다. '짐승을 숫자로' 라는 번역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풀이해 보라.' 라는 말은 원문에는 '계산해 보라.'로 되어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 저자는 짐승의 낙인이 666이고, 이것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숫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그 숫자를 한 번 계산해 보라고 하면서 그 숫자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은 단순히 그 숫자를 풀이하기 위한 지혜가 아니라 그 짐승의 영향력과 활동에 대처하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666'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유명한 숫자인데, 이에 대한 해석이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아직 아라비아 숫자가 도입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히브리 문자나 그리스 문자가 숫자를 겸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이름을 숫자로 바꾸어서 표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숫자를 다시 문자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666이라는 숫자도 당시 신자들에게는 누구의 이름인지 금방 알아들을 수 있는 이름이었고, 일종의 신자들끼리 주고받은 암호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원래의 이름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가장 널리 지지를 받는 해석은 666이 '네로 황제'를 뜻한다는 해석입니다. 네로 황제를 라틴어로 하면 '케사르 네론'인데 이것을 히브리어로 바꾸어서 다시 숫자로 표기한 다음 합산하면 666이 됩니다. <'케사르 네론' : 케-100, 사-60, 르-200, 네-50, 르-200, 오-6, ㄴ-50> (100+60+200+50+200+6+50=666.)
두 번째로 타당하게 생각되는 해석은, 6이라는 숫자는 7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불완전한 숫자, 나쁜 숫자인데 이것이 세 번 겹쳐졌기 때문에 666은 '아주 나쁜 숫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666은 '교회를 박해하는 아주 나쁜(네로처럼 악한) 박해자'를 뜻하는 상징적인 숫자라는 것입니다. 666을 여러 가지로 해석해서 별별 이름을 다 거론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다 인위적으로 짜 맞춘, 아무 근거가 없는 억지 해석입니다.
666은 묵시록이 기록될 당시에는 구체적으로 누군가를 가리키는 이름이었겠지만 오늘날에는 하나의 상징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떼어놓으려고 유혹하거나, 우리의 신앙을 박해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또 누구나 다 666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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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666"
창세기에서 하와가 선악과를 따서 먹게 된 것은
아마도 '호기심'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악마는 하와의 호기심만 적당히 자극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호기심에는 거룩한 호기심이 있고, 악마적인 호기심이 있습니다.
거룩한 호기심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뜻을 더 알고 싶어 하는 소망입니다.
악마적인 호기심은,
쾌락을 얻고 싶어 하는 그릇된 욕망이고, 범죄에 대한 호기심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닙니다.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지름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666이라는 숫자를 궁금해 합니다.
그것에 대한 해석을 공부하고 경각심을 갖는 사람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가용 승용차의 번호에서, 전화번호에서,
그 외에도 많은 개인적인 번호에서 666을 목격합니다.
어떤 이들은 악마의 상징을 즐겨 수집하거나 사용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 하느님보다는 악마를 섬기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종의 유치한 장난일 수도 있고, 기성 종교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모두가 다 악마적인 호기심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들과 점점 더 친숙해지는 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자꾸 반복되다 보면 사탄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고
결국에는 하느님보다는 사탄에게 더 가까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십자가를 비롯해서 우리를 도와주는 많은 상징들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거룩한 상징들은 소홀히 하면서
세속적이고, 악마적이고, 미신적인 것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또 즐겨 사용한다는 것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위험한 일입니다.
로마 시대 순교자들에게 666은
소름끼치는 흉악한 사탄의 상징이었고, 죽음의 상징이었습니다.
그것을 거부하고 죽을 것인가, 받아들여서 살 것인가...
결코 장난삼아 지니고 다닐 표시가 아닙니다.
로마 시대 순교자들에게 십자가는
목숨 걸고 지켜야 할 희생과 사랑과 구원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 때문에, 글자 그대로 "목숨을 걸었고, 바쳤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목걸이로, 팔찌로, 반지로 사용할 수 있는 장식이 아닙니다.
진지해져야 합니다.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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