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 14장> 어린양과 그의 백성

2015. 2. 13. 오전 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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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묵시록 14장>     송영진 모세 신부

 요한 묵시록 저자는 하느님의 종들이 세상 마지막 날에 차지할 행복과 평화를 중간, 중간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대목들이 있기 때문에 재앙, 징벌, 환난 등의 무서운 장면의 묘사를 좀 더 안정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14장 역시 종말 때의 구원 상황, 즉 행복과 평화를 미리 보여주면서 신자들에게 믿음과 용기와 희망을 주는 내용입니다.

<1절-5절 : 어린양과 그의 백성>

1절..<내가 또 보니 어린양이 시온 산 위에 서 계셨습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지금 어린양은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구원이란 어린양을 통해서, 즉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시온 산'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산의 이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온 산은 하늘의 시온 산으로서 구원의 장소를 뜻합니다. 그래서 어린양이 시온 산 위에 서 계신 것을 보았다는 말은, 구원자(구세주)이며 승리자이신 어린양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2절을 보면, 시온 산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이고 수많은 천사들이 모여서 잔치를 베푸는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이 말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144,000은 12x12x1,000인데, 12는 하느님을 뜻하는 3과 인간을 뜻하는 4를 곱한 완전수이고, 1,000은 많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144,000명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7장 4절-8절에서는 144,000명이 '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3절에서는) '땅으로부터 속량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7장 4절-8절의 144,000명과 14장의 144,000명은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해석은 근거가 약하고, 또 상징적인 표현으로 가득 찬 묵시록을 전체 내용의 흐름 속에서 해석하지 않고 지나치게 세부적인 단어나 구절만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또 144,000명이라는 숫자는 실제 숫자가 아니라 상징이기 때문에 7장과 14장의 144,000명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구분해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7장과 14장에 나오는 144,000명은 양쪽 다 구원받은 사람들을 뜻하는 같은 상징입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7장에서는 이마에 하느님의 인장을 받았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어린양의 이름과 하느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인장은 곧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로서 충성을 다했다는 뜻이고, 또 13장의 짐승의 낙인을 받은 사람들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2절..<그리고 큰 물 소리 같기도 하고 요란한 천둥소리 같기도 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들은 그 목소리는 또 수금을 타며 노래하는 이들의 목소리 같았습니다.>--이 구절에서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 큰 물소리, 요란한 천둥소리'는 모두 하느님의 위엄을 나타내는 표현인데, 뒤의 3절에서 말하는 노래 소리가 강력하다는 것, 즉 크고 힘이 있고 하느님의 위엄에 가득 찬 노래 소리라는 것을 나타냅니다.'수금을 타며 노래하는 이들의 목소리' 같았다는 것은 그 노래 소리가 곱고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수금>--(공동번역 성서는 '거문고'로 번역)--그리스어 원문에는 '키타라'로 되어 있고,  영어 성경에서는 '하프'로 번역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의 거문고 비슷한 악기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구원에 대해 감사 노래를 할 때 사용하던 악기입니다.

3절..<그들은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땅으로부터 속량된 십사만 사천 명 말고는 아무도 배울 수 없었습니다.>--'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앞에서' 라는 말은 한마디로 말해서 '하느님 앞에서' 라는 뜻입니다.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새 노래'는 5장 9절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여기서는 '새로운' 지배자이신 어린양과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땅으로부터 속량된>--이 세상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뜻입니다.

<십사만 사천 명 말고는 아무도 배울 수 없었습니다.>--하느님께 속한 사람들, 즉 구원받은 사람들만이 배우고 부를 수 있는 노래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이 허락되었다는 뜻입니다.

4절..<그들은 동정을 지킨 사람들로서 여자와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어린양을 위한 맏물로 사람들 가운데에서 속량되었습니다.>--구약성경에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을,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와 신자들을 부부로 표현하고, 우상숭배를 간통죄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동정을 지키다.', '여자와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다.' 라는 말은 우상숭배에 빠진 적이 없고, 신앙으로 하느님과(또는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뜻입니다.

 정당한 부부 간의 성행위는 몸을 더럽히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아름다운 일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결혼이나 성행위를 죄악시하는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또 144,000명을 동정을 지킨 남자들로만 제한해서 생각하거나, 또는 동정 서원을 지킨 남녀 수도자들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잘못된 해석입니다. (이 구절이 남성우월적인 표현인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당시의 사고방식의 한계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여자들이 불쾌하게 생각할 만한 표현이긴 합니다. 그러나 표현이 어찌되었든, 하느님의 구원에는 남녀노소의 차별이 '절대로' 없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입니다.>--이 말은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뜻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와 부활까지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어린양을 위한 맏물로 사람들 가운데에서 속량되었습니다.>--구약성경의 율법은 해마다 추수한 첫 곡식을 하느님께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144,000명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구원을 받아 하느님께 바쳐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첫 곡식(맏물)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과 어린양을 위한'이라는 말은 하느님과 어린양에 의해 구원받게 된 사실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3절과 4절에 나오는 '속량되다.' 라는 말은 5장 9절에서도 나온 표현으로서 예수님의 피로 사람들이 구원받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원래 '속량'이라는 말의 그리스어 단어는 '노예 상태로 잡혀 있는 사람을 위해서 몸값을 치르고 그를 구하다.' 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따라서 공동번역 성서의 '구출되다.'보다는 새번역 성경의 '속량되다.'가 좀 더 원뜻에 가깝습니다.

5절..<그들의 입에서는 거짓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흠 없는 사람들입니다.>--<그들의 입에서는 거짓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이 말은 그들이 거짓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여기서 '거짓말'은 우상숭배, 또는 사탄숭배를 뜻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그들의 신앙은 우상숭배나 사탄숭배에 물들지 않고 절대적으로 진실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흠 없는 사람들입니다.>--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은 아무런 흠도, 티도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바로 그렇게 흠도, 티도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느님께 바쳐진 것입니다. 이 말은 그들이 하느님에 의해 거룩해졌다, 또는 구원받았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6절-13절 : 심판의 예고>

6절..<나는 또 다른 천사가 하늘 높이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땅에서 사는 사람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언어권과 백성에게 선포할 영원한 복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또  다른 천사' 라는 말은 앞에 나왔던 천사들과는 구별되는 다른 천사라는 뜻입니다.

<하늘 높이>--8장 13절에서 독수리가 하늘 높이 날아다니면서 '불행하여라.' 라고 외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도 천사는 독수리가 날아다닌 그 공간을 날면서 같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성경에서는 천사에게 날개가 있고, 새처럼 날아다니는 것으로 표현합니다.'땅에서 사는 사람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언어권과 백성'은 전 인류를 뜻하는데, 천사가 외치는 말의 내용을 볼 때 회개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특별히 지목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복음>--여기서 말하는 '복음'은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 아니라, '최후의 심판 소식'입니다. 물론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을 알려주는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재앙을 예고하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이 소식의 효력은 끝까지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에 '영원한 복음'입니다. '선포할 영원한 복음을 지니고 있었다.' 라는 말은 영원한 복음을 선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7절..<그가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께 영광을 드려라. 그분께서 심판하실 때가 왔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샘을 만드신 분께 경배하여라.">--천사가 큰 소리로 외치는 말의 내용은, 하느님의 심판의 때가 왔으니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복종하고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국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영광을 드리고, 경배하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신심 행위입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샘'은 온 세상입니다.

8절..<또 다른 두 번째 천사가 따라와 말하였습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자기의 난잡한 불륜의 술을 모든 민족들에게 마시게 한 바빌론이!">--두 번째 천사가 바빌론의 멸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이사야서 21장 9절에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이미 일어난 것처럼 과거형으로 서술하는 것은 이 예언이 틀림없이 실현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이 예언의 내용이 지닌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바빌론'은 우상숭배와 온갖 악행의 도시를 상징하며, 여기서는 로마제국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무너졌다는 말은 멸망했다는 뜻입니다.

<자기의 난잡한 불륜의 술을 모든 민족들에게 마시게 한 바빌론>--'난잡한 불륜의 술'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음란한 욕정의 술'입니다. 이 말은 우상숭배와 윤리적 무질서와 타락과 방탕으로 가득 찼던 당시 로마의 축제를 가리킵니다. 그것을 모든 민족들에게 마시게 했다는 말은 로마가 우상숭배의 중심지이고, 다른 민족들에게도 우상숭배를 강요했다는 뜻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음행 때문에 분노의 포도주를'이라고 번역했는데, 불륜, 욕정이라는 말의 그리스어 단어 '튀모스'에 '분노' 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이것을 하느님의 분노로 해석하고, 자기의 음행 때문에 하느님의 분노로 인한 심판을 받게 했다는 뜻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9절-11절..(9)<또 다른 세 번째 천사가 그들을 따라와 말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짐승과 그 상에 경배하고 자기 이마나 손에 표를 받는 자는,> (10)<그 역시 하느님의 분노의 술을 마실 것이다. 하느님의 진노의 잔에 물을 섞지 않고 부은 술이다. 그런 자는 또한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11)<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그 연기는 영원무궁토록 타오르고, 짐승과 그 상에 경배하는 자들, 그리고 짐승의 이름을 뜻하는 표를 받는 자는 누구나 낮에도 밤에도 안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세 번째천사는 '짐승을 예배하고 짐승의 낙인을 받은 자들'에게 하느님의 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분노의 술을 마실 것이다.' 라는 말은 하느님의 분노로 인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8절에서 '바빌론'의 죄를 '난잡한 불륜의 술'로 표현했기 때문에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분노의 술'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8절의 '술'은 죄를 뜻하고,10절의 '술'은 그 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과 징벌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진노의 잔에 물을 섞지 않고 부은 술'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분노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표현하는 구절입니다. '물을 섞지 않고 부은 술'이란 물을 타서 희석시키지 않은 원래 그대로의 순수한 술인데, 하느님의 노여움이 은총과 자비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노여움이라는 뜻입니다.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양 앞에서' 라는 말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피를 흘리고 희생하신 어린양을 배신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된 것임을 나타냅니다. 또 용과 짐승에게 복종했던 사람들이 이제 어린양과 천사들 앞에 굴복하게 되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라는 말은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장면에서 온 표현으로 종말의 심판과 처벌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그 연기는 영원무궁토록 타오르고' 라는 말은 그들의 고통에는 끝이 없다는 것, 즉 영원한 형벌이라는 뜻입니다. 형벌이 영원하다는 바로 그 점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낮에도 밤에도 안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은 쉴 새 없이 밤낮으로 영원한 형벌에 시달릴 것이라는 말인데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또는 하느님의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12절..<여기에 하느님의 계명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의 인내가 필요한 까닭이 있습니다.>--13장 10절에서 나왔던 말이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자들, 배교자들은 9절-11절의 심판과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니, 그런 처벌을 피하려면 성도들(신자들)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켜야 하고, 박해를 받아도 인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13절..<나는 또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하고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12절까지는 처벌의 위협이었지만, 13절은 행복의 약속입니다.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주님을 믿다가 죽는 사람들'입니다. 순교자들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하다가 죽는 사람들을 모두 뜻합니다. 그들에게는 9절-12절의 내용과는 대조적으로 영원한 행복이 약속되고 있습니다.

 '기록하여라.' 라는 말은 묵시록에 기록하라는 뜻입니다.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는 하느님의 음성입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라는 말은 요한 묵시록 저자의 기록이 진실하다는 것을 성령께서 보증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이 말은 앞에서 말한 '행복'을 설명한 것입니다. 죽음이란 마지막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옮겨 가는 과정입니다. 신앙인들의 이 세상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것을 잘 극복한 다음 저 세상에 가게 되면 안식과 참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충실한 신앙과 인내 등은 결코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심판 때에 모두 기억될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믿음과 인내는 무의미한 일이 아니고, 나중에 누리게 될 행복을 미리 준비하는 일입니다. '한 일'은 삶 전체를 뜻합니다.  '따라간다.' 라는 말은 하느님의 심판대까지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즉 하느님의 심판 때에 모두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심판대에 서게 되면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삶 전체가 모두 드러나게 될 것이고, 삶을 잘 살았다면 그대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14절-20절 : 마지막 수확>

14절..<내가 또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구름'은 하느님의 나타나심을 상징하는데, 여기서는 이제 하느님의 심판의 날이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이미  1장 7절에서 메시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은 다니엘서 7장에서 온 표현으로 메시아를 뜻합니다. 그런데 뒤의 17절-19절에서 천사가 낫을 들고 있기 때문에 14절의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을 메시아가 아니라 천사들 중의 하나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 묵시록 전체 내용과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의 존엄성을 생각할 때, 천사가 아니라 심판관으로 오시는 메시아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머리에 금관을 쓰고' 라는 말은 예수님의 승리와 통치권을 상징합니다.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심판관으로서의 직무를 상징합니다. '날카로운'이라는 말은 정확함과 공정함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오복음 24장 36절에서 심판의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심판의 날과 시간을 결정하는 권한은 아버지에게만 있다는 뜻입니다. 그 말씀처럼 지금 심판관이신 메시아는 모든 준비를 갖추고, 아버지의 결정과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5절..<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천사가 성전에서 나왔다는 말은 아버지의 명령을 받아서 메시아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계신 곳에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천사는 심판을 시작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 즉 심판관이신 메시아께 전달합니다.

 최후의 심판을 '낫으로 곡식을 수확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요엘서 4장 13절, 마르코복음 4장 29절에서 온 것입니다. 마태오복음 3장 12절을 보면 최후의 심판을 뜻하는 추수 후에 알곡과 쭉정이를(의인과 죄인을) 구분하는 작업을 하는데, 여기서는 추수(수확) 자체가 곧 구분 작업인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표현의 차이일 뿐 본질적인 차이는 아닙니다.)

16절..<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낫을 한 번 휘두르자 추수가 끝나버립니다. 즉 심판은 시작하자마자 바로 끝나게 됩니다. 이것은 심판관이신 메시아의 권능과 위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5절과 16절의 수확은 의인들을 대상으로 한(의인들을 구원하는) 수확입니다. 즉 처벌을 위한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심판입니다.

17절..<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왔는데, 그도 날카로운 낫을 들고 있었습니다.>--17절-20절은 죄인들을 대상으로 한 심판입니다. 16절에서는 메시아께서 직접 낫을 휘둘렀는데, 17절-20절에서는 (아마도 메시아는 하늘에서 지휘만 하고) 천사가 낫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왜 하느님의 심판을 천사가 대신 집행하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왔다는 말은 15절에서처럼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집행하러 나왔다는 뜻입니다.

18절..<또 다른 천사가 제단에서 나왔는데, 그는 불에 대한 권한을 지닌 천사였습니다. 그가 날카로운 낫을 든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날카로운 낫을 대어 땅의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들을 거두어들이십시오. 포도가 다 익었습니다.">--이 천사는 8장 3절-5절에 등장했던 그 천사로 해석됩니다.

그 천사는 성도들의 기도를 모아 하느님께 바친 뒤에 향로에 숯불을 담아 땅에 던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곱 나팔의 재난이 시작되었습니다. 또 그 천사가 제단에서 나왔다는 것은 6장 9절-10절의 순교자들의 외침과 연결됩니다. 순교자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에 있고, 그들이 하느님께 심판을 탄원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단에서 나온 천사가 낫을 든 천사에게 포도를 수확하라고 외치는 것은 순교자들의  탄원을 전달하면서 심판을 재촉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성경에서 포도밭은 원래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표현이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땅의 포도나무, 포도송이, 포도' 모두 다 죄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들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죄인들을 심판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19절..<그러자 그 천사가 땅 위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들이고서는, 하느님 분노의 큰 포도 확에다 던져 넣었습니다.>--여기서도 16절처럼 낫을 한 번 휘둘러서 포도 수확을 끝냅니다.

<하느님 분노의 큰 포도 확>--이사야서 63장에서 온 표현으로 포도즙을 짜는 확(술틀) 자체가 하느님 분노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느님 분노의 큰 포도 확'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뜻을 더욱 강하게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포도 확>--옛날 이스라엘에서는 큰 통에 포도를 넣고 짓밟아서 포도즙을 짜냈습니다.사람이 통 안에 들어가서 포도를 밟으면 통의 아래쪽에 있는 구멍에서 포도즙이 흘러나옵니다.

20절..<도성 밖에 있는 그 확을 밟아 누르니, 그 확에서 높이가 말고삐에까지 닿는 피가 흘러나와 천육백 스타디온이나 퍼져 나갔습니다.>--<도성 밖에 있는>--'도성'은 예루살렘입니다. 포도 확이 도성 밖에 있다는 것은 원래 속죄 제물을 진지 밖에서 태우라는 규정(레위기 16장)과 관계가 있는 표현이고, 이방민족들을 하느님께서 심판하실 때 그 일이 도성 근처에서(밖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던 유대인들의 전승의 영향도 받았을 것입니다. '확을 밟아 누르다.' 라는 말은 심판과 처벌을 뜻합니다.

<그 확에서 높이가 말고삐에까지 닿는 피가 흘러나와>--여기서 '피'는 분명히 사람의 피입니다. 그 피가 확에서 흘러나와서 생긴 피바다의 깊이가 말고삐 높이라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대규모의 학살이라는 뜻입니다. 말고삐 높이는 거의 사람의 키 높이입니다.

<천육백 스타디온이나 퍼져 나갔습니다.>--그 피의 강의 길이가 천육백 스타디온이나 된다는 것도 역시 대량 학살을 뜻합니다. 한 스타디온은 192m 정도입니다. 따라서 1,600스타디온은 300Km가 넘는 거리입니다. 여기서 1,600은 상징적인 숫자인데 4x4x100=1,600으로, 4는 사방, 세상을 뜻하고, 100은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천육백 스타디온은 피가 온 세상을 덮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무도 하느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뜻도 됩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거의 천리 가량'으로 번역했는데 원문의 뜻을 살리지 못한 번역입니다. 원문에는 1,600 스타디온으로 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의 실제 길이가 1,664스타디온, 즉 천리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1,600스타디온을 실제 길이가 아니라 상징적인 숫자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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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최후의 심판은 경쟁률도 없고 합격정원도 없는 입학시험입니다.

하늘나라의 정원을 144,000명으로 해석하는 사이비 종파도 있지만,

우리는 하늘나라에는 입학정원이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자격만 갖추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즉 입학정원은 없지만 자격제한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시험은 선발시험이 아니라 자격시험입니다.

실제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이론적으로는 전 인류가 모두 다 구원받을 수도 있고,

전 인류가 모두 다 멸망할 수도 있습니다.


즉 합격 아니면 불합격입니다.

알곡 아니면 쭉정이입니다.

밀이 아니면 가라지입니다.


그러니 누구보다는 못했지만 누구보다는 잘했다는 말은 할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나는 103위 성인보다는 못하지만,

저기 저 사람보다는 신앙생활을 잘했다고 자부한다." 라는 식의 말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 세상의 시험에서는

모두가 다 영점일 때 혼자서 1점이라도 받으면 그 사람이 일등입니다.

모두가 다 백점일 때 혼자서 99점을 받으면 그 사람이 꼴찌입니다.

인간 세상의 시험에서는

만점을 받은 사람부터 99점, 98점... 0점까지 골고루 있지만,

하느님의 시험 점수는 만점과 영점밖에 없습니다.

합격한 사람은 누구나 다 전원 수석 합격입니다.

탈락한 사람은 누구나 다 전원 꼴찌로 탈락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무조건 만점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뿐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잘하는 것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못한다고 여겨져도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준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느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누구라도...

그 중에서도 많은 탈락자가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교도소 재소자, 전과자, 냉담 중인 사람, 조당에 걸린 사람들...

그 중에서도 많은 합격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합격 아니면 불합격입니다.

알곡 아니면 쭉정이입니다.

밀 아니면 가라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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