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 8장> 일곱째 봉인과 금 향로

2015. 2. 13. 오후 2:30:36

글자

 

<요한 묵시록 8장>    송영진 모세 신부

  제 마지막 봉인을 뜯고, 일곱 재난이 다시 펼쳐집니다. 이 재난들은 앞의 6장의 재난들보다 훨씬 더 강도가 심합니다.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재난은 더욱 심해지고, 회개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집니다.

 

<1절-5절 : 일곱째 봉인과 금 향로>

 1절..<어린양이 일곱째 봉인을 뜯으셨을 때, 하늘에는 반 시간가량 침묵이 흘렀습니다.>--여기서 하늘에 흐르는 '침묵'은 하느님의 나타나심을 뜻하는 고요함입니다. 그러나 마치 폭풍 직전 같은 고요함, 즉 불길한 정적이고, 공포 분위기입니다. 매 맞는 순간보다 매 맞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때가 더 고통스러운 것과 같습니다.이 침묵에 대해서 다른 해석도 있는데, 뒤의 3절-4절에서 천사가 하느님께 성도들의 기도를 바칠 때, 하느님께서 귀를 기울여 듣는 시간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성도들의 기도를 듣기 위해서 원로들, 천사들, 네 생물들의 찬양 노래를 잠시 멈춘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내용을 볼 때, 더 큰 재난을 암시하는 불길한 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반 시간 가량'은 아직 채워지지 않은 시간, 촉박한 시간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서 더 큰 재난이 '곧' 닥칠 것이라는 뜻입니다.

2절..<그리고 나는 하느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에게 일곱 나팔이 주어졌습니다.>--토빗기 12장 15절을 보면,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일곱 천사'는 우리가 대천사라고 부르는 천사들인데 '하느님 앞에(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서 있다는 말은 언제 어떤 명령이라도 즉시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세 대천사 가브리엘, 라파엘, 미카엘의 이름만 나옵니다.

<그들에게 일곱 나팔이 주어졌습니다.>--나팔은 성경에서 하느님의 등장을 알리고, 흩어진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인데, 여기서는 종말의 사건들을 알리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곱 나팔'이라고 한 것은 일곱 천사가 각자 나팔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3절-4절..(3)<다른 천사 하나가 금 향로를 들고 나와 제단 앞에 서자, 많은 향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함께 어좌 앞 금 제단에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4)<그리하여 천사의 손에서 향 연기가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하느님 앞으로 올라갔습니다.>--일곱 천사가 아직 나팔을 불기 전에, 반 시간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있는 동안에 일곱 천사가 아닌 '다른 천사 하나'가 천상제단 앞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천사가 하느님께 향을 바칩니다. 앞의 5장 8절에서 '향은 성도들의 기도' 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금 향로'와 '금 제단'은 예루살렘 성전 모습에서 온 표현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날마다 번제물을 바쳤고, 분향예절을 거행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성전에서는 번제 제단은 없고, 분향을 위한 금 제단만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써 구약의 제사는 이미 폐지되었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는 희생 제물과 번제물을 바치는 번제 제단은 필요가 없습니다.)여기서 '향'은 사람들의 기도를 깨끗한 기도로 만든다는 뜻이고, 향 연기가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하느님 앞으로 올라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즐겨 받으시는 제물은 곧 우리의 기도라는 것을 뜻합니다.

5절..<그 뒤에 천사는 향로를 가져다가 제단의 숯불을 가득 담아 땅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천둥과 요란한 소리와 번개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그 천사는 신자들의 기도가 향과 함께 피어오르는 제단에서 불타는 숯을 가져다가 향로에 가득 담아 땅에 던집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심판을 요청하는 6장 10절의 외침에 대한 응답으로, 하느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 그래서 이제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한다는 뜻입니다.'천둥, 요란한 소리, 번개, 지진'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심을(하느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6절-13절 : 처음 네 나팔>

 천사들이 나팔을 불 때마다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신 피조물이 조금씩(삼분의 일씩) 파괴되고 두려움이 점차 고조되고 있습니다. 삼분의 일씩 파괴된다는 것은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정화되고, 완성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기 나오는 재앙들은 탈출기에서 이집트에 내린 재앙들과 같습니다.

6절..<그때에 나팔을 하나씩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 준비를 하였습니다.>--이 구절은 이제 곧 하느님의 심판이 시작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무서운 재앙이 시작된다는 것을 예감하게 하는 표현입니다. 지금 천사들은 하느님께서 그 순간을 결정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7절..<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피가 섞인 우박과 불이 생겨나더니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땅의 삼분의 일이 타고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타고 푸른 풀이 다 타 버렸습니다.>--첫째 천사의 나팔은 땅 위의 재난을 알리고 있습니다. 7장 3절에서 '땅도 바다도 나무도 해치지 마라.' 라고 했던 일시정지 시간은 지났고, '피가 섞인 우박과 불'로 땅과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타고, 푸른 풀이 다 타버립니다.(뒤의 9장 4절을 보면, 땅의 풀과 푸성귀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푸른 풀이 다 타버렸다는 것은 완전히 타서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무서운 재앙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생각됩니다.)

우박은 탈출기 9장에서 이집트에 내린 일곱 번째 재앙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우박에 피와 불을 추가시켜서 더욱 무서운 재앙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탈출기에서는 재앙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여기서는 심판이 목적입니다. '삼분의 일'은 한정된 부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아직도 이 재앙이 마지막이 아님을 뜻합니다.

 8절-9절..(8)<둘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불타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졌습니다.그리하여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9)<생명이 있는 바다 피조물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부서졌습니다.>--두 번째 재앙은 화산 폭발입니다. '불타는 큰 산'은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으로 해석됩니다. 화산이 폭발해서 바다에 던져졌다는 것은  화산의 용암이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예레미야서 51장 25절에서 온 표현일 것입니다. 바다가 피로 변했다는 것은 탈출기 7장에서 이집트에 내린 첫째 재앙입니다. 화산이 폭발해서 용암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자 바다 속 생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화산 폭발로 거세어진 물결 때문에 배들의 삼분의 일이 침몰합니다.

10절-11절..(10)<셋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횃불처럼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샘들을 덮쳤습니다.> (11)<그 별의 이름은 '쓴흰쑥'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물의 삼분의 일이 쓴흰쑥이 되어, 많은 사람이 그 물을 마시고 죽었습니다. 쓴 물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세 번째 나팔 소리에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고 물이 쓴 물로 변합니다. '횃불처럼 타는 큰 별'은 운석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창세기 19장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유황과 불'을 연상시킵니다. 비슷한 표현이 신명기 29장 16절-24절, 예레미야서 23장 15절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사해의 물이 '쓴 쑥비' 때문에 마실 수 없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어떻든 '쓴 쑥'이라는 이름의 별이 떨어져 물의 삼분의 일이 쓴 물이 되고 그 물을 마신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당시 사람들은 쑥 자체보다는 쑥의 쓴 맛을 두려워했습니다. 여기서 '쓴 맛'은 하느님의 심판의 쓴 맛(두려움과 괴로움)을 상징합니다.(공동번역 성서는 그냥 '쑥'으로, 새번역 성경은 '쓴흰쑥'으로 번역했는데, '쓴 쑥'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쓴흰쑥'이라는 말이 어디서 온 말인지, 왜 그렇게 번역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12절..<넷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해의 삼분의 일과 달의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것들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리하여 낮의 삼분의 일이 빛을 잃고 밤도 그렇게 되었습니다.>--네 번째 재앙은 탈출기 10장의 이집트에 내린 아홉 번째 재앙입니다. 탈출기에서는 3일 간의 암흑이 재앙의 내용이었는데, 여기서는 해, 달, 별의 삼분의 일이 빛을 잃게 됩니다.

암흑의 재앙은 이제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뜻이고, 생명체가 성장하고 번성하는 데 꼭 필요한 빛이 감소되었기 때문에 땅 위의 생물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을 더욱줄이는 재앙이기도 합니다. '타격을 받아' 라는 말은 별들이 캄캄해지는 것을 나타내기위해 랍비들이 쓰던 표현입니다. '낮의 삼분의 일이 빛을 잃고 밤도 그렇게 되었다.' 라는 말은 '빛을 내는 시간의 삼분의 일'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해, 달, 별들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졌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나머지 삼분의 이가 빛을 낼 수 있는 시간의 삼분의 일도 잃었다는 뜻입니다.

13절..<나는 또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 높이 나는 것을 보고 그것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불행하여라, 불행하여라, 불행하여라, 땅의 주민들! 아직도 세 천사가 불려고 하는 나팔 소리가 남아 있다.">--여기서 '독수리'는 하느님의 심판을 알리는 천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독수리는 당시에는 시체와 관련된 불길한 새로 여겨졌습니다. 여기서도 독수리는 죽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늘 높이 나는 것을 보고>--공동번역 성서에서는 '하늘 한가운데서 날아다니는'으로 번역했는데, 공동번역 성서의 번역이 맞습니다. 독수리가 '하늘 한 가운데서' 날아다닌다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위치에서 날아다닌다는 뜻인데, 이것은 재앙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또 독수리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천상적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독수리가 '큰 소리'로 말한다는 것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외친다는 뜻입니다.

<불행하여라>--공동번역 성서에서는 '화를 입으리라.' 라고 번역했는데, 뜻은 같지만 내용을 생각하면 '불행하여라.'보다는 '화를 입으리라.'가 더 적절한 번역입니다. 이 말은 재앙을 예고하는 말입니다. 또 이 말을 세 번 반복하는 것은 아직도 세 번의 나팔 소리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불나팔' 소리가 셋이나 남아 있다고 번역했는데, 왜 '불나팔'이라고 번역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냥 '나팔'입니다.)

<땅의 주민들>--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지금까지 나온 네 번의 재앙은 인류의 생활공간의 삼분의 일에 타격을 입혔지만, 남아 있는 재앙들은 인간을 직접 강타하게 될 것입니다. 재앙들이 계속 삼분의 일만 덮치는 것은 인간들에게 회개를 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은 무조건 심판하고 처벌하시는 분이 아니라,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회개한다면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만일에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나(회개하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

 

<묵상> "삼분의 일"

 

대형 참사가 생길 때마다 인재다, 안전 불감증이다, 말들을 많이 하지만,

 죽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일 것입니다.

 사고의 원인이 무엇이었든

 그들에게는 그 순간이 곧 종말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영혼이 어떻게 될지

 하느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어떻게 하실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만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할 뿐입니다.

 그런 대형 참사가 자기를 비껴간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루카 13,4-5)."

 

지금 살아 있는 우리에게는 회개할 시간 여유가 좀 더 주어진 것뿐입니다.

 종말의 재앙이 닥치면 한순간에 인류가 전멸할 것 같은데,

 묵시록에서는 삼분의 일씩 파괴된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회개할 수 있는 기회는 있고,

 회개한다면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먼저 죽어버린 삼분의 일의 영혼 사정에 대해서는 쉽게 말할 수 없지만,

 남아 있는 삼분의 이는 살아남은 것이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회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운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삼분의 이의 시간은 내일도 모레도 아니고 오늘입니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그럼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행복이 언제 사라질지 모릅니다.

 지금 불행하십니까?

그럼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의 불행은 회개하라는 경고일 것입니다.

 지금 건강하십니까?

 그럼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언제 병들어 눕게 될지 모릅니다.

지금 병석에 누워 있습니까?

그럼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더 이상 시간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사업도 잘되고 돈도 잘 벌고 풍족하게 살고 있습니까?

그럼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돈이라는 사탄이 노리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사업도 안 되고 돈이 없어 쪼들리고 있습니까?

그럼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이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그럼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그 시간은 금방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누군가에게 배신당하고, 실연당하고, 그래서 고통스럽습니까?

그럼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더 큰 죄를 지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삼분의 일...

지금 겪고 있는 불행은 아직 삼분의 일일 뿐이고

나머지 삼분의 이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묵시록은 말합니다.

그러니 너무 불행해서 견딜 수 없다는 말은 아직은 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 누리는 행복은 겨우 삼분의 일일 뿐이고

나머지 삼분의 이는 마지막 날을 위해 미루어져 있다고 묵시록은 말합니다.

그 행복의 나머지 삼분의 이를 채워 완전한 행복이 될 때까지는

행복하다고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삼분의 일...

우리 삶은 아직도 과도기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