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 3장> 사르디스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 외

2015. 2. 13. 오후 2:52:05

글자

 

<요한 묵시록 3장>    송영진 모세 신부

<1절-6절 : 사르디스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

 

1절..<"사르디스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말한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다.>--<사르디스>--'사르디스'는 티아티라에서 남쪽으로 50Km쯤, 스미르나에서 동쪽으로 80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인데, 높이 450m의 절벽이 3면에 있는 난공불락의 천연요새였습니다. 그러나 경계를 게을리 한 탓으로 페르시아와 그리스에게 점령당했던 역사가 있는 도시였습니다.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1장 4절과 1장 16절에서 나왔던 표현인데, 여기서 '일곱'은 완전함, 충만함을 상징하고, '일곱 영을 가진 이' 라는 말은 '하느님의 성령을 충만히 가지신 분'이라는 뜻이고, '일곱 별을 가진 이'라는 말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1,20)'을 장악하고 계신 분, 즉 전체 교회를 지배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 라는 표현은 사르디스 교회와 관련된 것으로서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는 교회에게 예수님을 '교회를 지배하시면서 교회에 성령을 보내시는 분'으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충만한 성령'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주님은 교회의 모든 일을 꿰뚫어보시는 분입니다.

<너는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다.>--사르디스 교회는 특별히 지적할 만한 죄는 없지만, 활기를 잃고 잠든 것 같은 상태입니다.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 사탄의 침입이 가능한 상태라는 뜻입니다.

 

2절..<깨어 있어라. 아직 남아 있지만 죽어 가는 것들을 튼튼하게 만들어라. 나는 네가 한  일들이 나의 하느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보지 않는다.>--<깨어 있어라.>--이 말은 복음서에 자주 나오는 말인데, 사탄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깨어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잠든 상태에서 깨어나서 항상 살아 있는 신앙생활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아직 남아 있지만 죽어가는 것들을 튼튼하게 만들어라.>--사르디스 교회에도 비록 소수 이긴 하지만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이 아직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영적으로 죽은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완전히 죽은 상태가 되기 전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네가 한 일들이 나의 하느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보지 않는다.>--이 구절은 특별히 지적할 만한 죄가 없다고 해서 잘했다고 칭찬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 교회는 태평스러움, 무사안일, 방심 등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 잠들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심하게 꾸짖을 필요가 있습니다. 잘못한 것이 없다는 자만심도 잘못입니다. 어떻든 사르디스 교회는 '하느님 앞에서', 즉 '하느님의 기준으로는' 완전한 상태가 아닙니다.

3절..<그러므로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 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하여라.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 너는 내가 어느 때에 너에게 갈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 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하여라.>--이 말은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였던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뜻입니다. 즉 교회 설립 당시의 열성을 회복하라는 촉구입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신자로서 해야 할 일들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도 함께 가르쳤을 것입니다. 신자들이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해야 할 일들을 적극적으로, 또 능동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복음에 대한 열성,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는 생명력과 활기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 지금의 상태를 반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이 말은, '교회가 계속 방심한 채로 회개하지도 않고, 잠든 것 같은 상태, 죽은 것 같은 상태로 있으면'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 너는 내가 어느 때에 너에게 갈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사르디스는 난공불락의 천연요새라는 자연조건만 믿고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절벽을 기어오른 소수의 특공대에 의해 두 번이나 점령당했습니다. 그처럼 사르디스 교회도 계속 무방비 상태로 지낸다면 갑자기 닥치는 주님의 심판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도둑처럼 가겠다.' 라는 말은 마태오복음 24장 43절에서 온 표현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심판하기 위해 오신다는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4절..<그러나 사르디스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사르디스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옷'은 몸을 뜻합니다. 그리고 '몸'은 '영혼의 옷'입니다. 따라서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은 '영혼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 '악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여기서 '흰 옷'은 '부활'과 '하늘나라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은 주님의 영광에 참여할 '자격'이 있고, 주님과 '함께 다닐 자격'이 있습니다. 즉 주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5절-6절..(5)<승리하는 사람은 이처럼 흰옷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명의 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이고, 내 아버지와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6)<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승리하는 사람'은 '흰 옷'을 입고, '생명의 책에 이름이 적히고', 예수님의 '증언'을 보상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책'은 다니엘서 12장 1절에 나오는 말입니다. 구원받을 사람들의 명단은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만, 악인들은 그 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의 책에서 이름을 지우지 않겠다는 것은 구원을 받고 하느님의 영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생명의 책에 구원받을 사람의 명단이 적혀 있다는 말을 구원받을 사람이 미리 다 '예정' 되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안다고 증언'하시겠다는 약속은 마태오복음 10장 32절(루카복음 12장 8절)에 있는 약속인데, 예수님께서 직접 그를 위해 변호해주시겠다는 약속이고, 역시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에도 현상유지로 만족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큰 잘못은 없지만 활기도 없고, 생명력도 없고, 그저 조용한 성당들..., 기쁨도 없고 열성도 없이 의무적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

 

<7절-13절 : 필라델피아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

 

7절..<"필라델피아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거룩한 이, 진실한 이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 자 없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필라델피아>--'필라델피아'는 사르디스 남동쪽으로 45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도시로 지진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서기 17년과 23년에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티베리우스 황제가 재건했습니다.

<거룩한 이, 진실한 이>--'거룩한 분'과 '진실한 분'은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에게 적용되었던 호칭인데 여기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하느님은 다른 잡신들, 우상들과 구별되는 '거룩하신' 분이시고, 당신의 약속에 충실하신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다윗의 열쇠'는 이사야서 22장 22절에서 온 표현인데, 원래는 왕실의 회계 담당에 관한 표현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새 예루살렘'의 입장 여부를 판단하는 권한을 뜻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서 심판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 자 없는 이>--이 말은 누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누가 제외될 것인지는 예수님만이 결정하신다는 뜻입니다.

8절..<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보라, 나는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을 네 앞에 열어 두었다. 너는 힘이 약한데도, 내 말을 굳게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나는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을 네 앞에 열어 두었다.>--이 말은 '다윗의 열쇠를 가진' 주님께서 신자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으로 해석됩니다. (이 말을 코린토 전서 16장 9절에서 온 표현으로 보고 선교활동의 성공을 보장하는 약속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너는 힘이 약한데도>--이 말은 '비록 소수이지만'이라는 뜻입니다. 박해로 인해 대다수 신자들이 공동체를 떠나고 소수의 신자들만 남아 있는 상황을 뜻합니다.

<내 말을 굳게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이 말은 비록 소수의 신자들만 남아 있지만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칭찬입니다. '내 말을 굳게 지키며', 즉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실천하고 있고,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즉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증언했다는 것입니다.

9절..<보라, 나는 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을 이렇게 하겠다. 그들은 유다인이라고 자처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보라, 나는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엎드리게 하겠다. 그리하여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사탄의 무리' 라는 말은 앞의 2장 9절에서 나왔던 말입니다. 자칭'야훼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사탄의 무리'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유다인이라고 자처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이 말은, 그들은 유대인이면서 유대인답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껍데기만 유대인일 뿐이고, 유대인이라고 할 수 없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엎드리게 하겠다.>--이 말은 처음에 선택받은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은 그 특권을 잃었고, 이제 그들이 새로 선택받은 백성들(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굴복하고 존경을 표시하게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이 말은, 하느님의 사랑이 처음에 선택받은 백성이었던 유대인들에게서 새로 선택받은 백성이 된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로 옮겨 갔음을 유대인들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10절..<네가 인내하라는 나의 말을 지켰으니, 땅의 주민들을 시험하려고 온 세계에 시련이 닥쳐올 때에 나도 너를 지켜 주겠다.>--<인내하라는 나의 말을 지켰으니>--이 말은 박해를 잘 참고 견뎠고,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잘했다는 뜻입니다.

<땅의 주민들>--믿음도 없고,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시험하려고 온 세계에 시련이 닥쳐올 때에 나도 너를 지켜주겠다.>--'시험'과 '시련'은  마태오복음 24장에 나오는 종말의 재난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이 말은 온 세상에 대규모로 닥칠 종말의 재난에서 신자들을 보호해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11절..<내가 곧 간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지켜, 아무도 네 화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여    라.>--<내가 곧 간다.>--이 말은 '조금만 더' 참고 견디라고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지켜, 아무도 네 화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여라.>--이 구절은, 온 세상에 닥치는 큰 재난 기간 동안에 대규모 박해도 일어날 텐데, 그 박해를 잘 견뎌내라는 것, 즉 배교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은 달리기 경주 같은 것인데,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서 결승점에 도착한 선수들만이 월계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화관'은 앞의 2장 10절에서 언급했던 생명의 월계관입니다.

12절-13절..(12)<승리하는 사람은 내 하느님 성전의 기둥으로 삼아 다시는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게 하겠다. 그리고 내 하느님의 이름과 내 하느님의 도성, 곧 하늘에서 내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사람에게 새겨 주겠다.>(13)<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승리하는 사람은 내 하느님 성전의 기둥으로 삼아 다시는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게 하겠다.>--필라델피아는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주민들은 집밖으로 나가 안전지대로 피신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의 소망은 지진에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기둥과 허물어지지 않는 건물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집에서 산다면 대피하기 위해서 집 밖으로 뛰쳐나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승리하는 사람은 하느님 성전 기둥으로 삼겠다.', 또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게 하겠다.'  라는 말은 필라델피아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삶, 평화로운 삶'을 마련해 주겠다는 뜻입니다.

<내 하느님의 이름과 내 하느님의 도성, 곧 하늘에서 내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사람에게 새겨 주겠다.>--하느님의 이름과 예수님의 이름을 새겨 준다는 것은 주님에게 속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뜻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새겨 주겠다는 것은 새 예루살렘의 주민으로 살게 해주겠다는 뜻입니다.

이름을 새겨 준다는 표현은 탈출기 28장에서 온 표현입니다. 당시의 대사제는 '야훼께 봉헌된 성직자' 라고 새겨진 순금 패와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의 이름을 새긴 보석으로 만든가슴받이 등을 착용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은 구약의 대사제과 같은 특권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21장에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나의 새 이름'은 '영광스럽게 되신 주님의 이름'을 뜻합니다.

 

 <14절-22절 ;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

 

14절..<"라오디케이아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아멘 그 자체이고 성실하고 참된 증인이며 하느님 창조의 근원인 이가 말한다.>--<라오디케이아>--'라오디케이아'는 필라델피아 남동쪽 65Km 지점에 있는 부유한 상업 도시였는데 모직물이 주요 생산품이었고 은행제도, 의학 등이 발달했습니다. 특히 안약이 유명해서 수출도 했습니다.

<아멘 그 자체이고 성실하고 참된 증인>--'성실한 증인'은 1장 5절에서 나왔던 표현입니다. '아멘'은 '진실하다.' 라는 뜻의 히브리어인데, 아멘을 기도문 끝에 붙이면 그 기도가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을 나타내고, 어떤 말을 할 때 그 말 앞에 붙이면 자신의 말이 참되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고 말씀하신 때가 많은데, '진실로'의 원문 단어가 '아멘'입니다. 여기서 '아멘 그 자체' 라는 말과 '성실하고 참된'이라는 말은 사실상 같은 뜻이어서, '아멘 그 자체이고 성실하고 참된'이라는 말은 같은 뜻의 말을 삼중으로 반복한 강조의 표현입니다.

<하느님 창조의 근원인 이>--'창조의 근원(시작)'이라는 표현은 요한복음 1장 3절, 콜로새서 1장 18절에도 나오는데 우주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겨났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창조의 근원인 이'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서 그리스도에게도 창조주이신 하느님처럼 우주 만물의 통치권이 있음을 나타냅니다.라오디케이아 신자들에게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은 뒤의 21절의 약속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뒤의 21절은 온 세상의 통치권을 갖고 계신 분께서 '승리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통치권에 참여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구절입니다.

 

15절..<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이 구절은 하느님을 믿고 섬기면서도 세속과 이교도를 거부하지도 않는, 중간에서 '양다리 걸치기' 같은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태도를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과 세속의 중간 상태에서 만족하면서 스스로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는 순수한 이교도보다 더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이라는 말을 '차든지 뜨겁든지 양자택일하라.' 라는 말씀으로 해석 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더욱더 뜨거워져야 한다는 말씀으로 해석해야 합니다.(저는 15절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조금 다르게 해석합니다. '차가움'은 세속과 이교도에 대한 강한 거부, 적대감으로 해석하고, '뜨거움'은 '하느님에 대한그래서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려면 세속에 대해서는 아주 차갑게, 하느님에 대해서는 아주 뜨겁게 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여기까지는 저의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그렇게 해석하더라도 '미지근함'에 대한 해석은 같습니다.'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상태는 비신자같이 살면서도 신앙생활도 조금은 하고 있는'양다리 걸친' 신앙생활로 해석됩니다.)

 

16절..<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주님은 미지근한 상태를 몹시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신자는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라고 경고하십니다. 이 말은 미지근한 신자는 비신자로 취급하겠다는 뜻입니다.

 

17절..<`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하고 네가 말하지만>--라오디케이아는 부유한 상업 도시였고, 그곳 교회의 신자들도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었고, 그 도시의 세속인들과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고민거리도 없었고, 그리스도를 증언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하느님을 별로 아쉬워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스미르나 교회는 물질적으로 궁핍했지만 영적으로는 부유했는데, 라오디케이아 교회는 반대로 물질적으로는 부유하고 영적으로는 불쌍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라오디케이아 신자들이 스스로 부유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착각일 뿐이고, 그들은 영적으로는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한', 한마디로 말해서 '불쌍한' 상태에 있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 먼' 상태에 있고, 하느님 앞에서 '벌거벗은', 즉 '수치스러운' 상태에 있다는 것이 이 구절의 뜻입니다.

 

18절..<내가 너에게 권한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내가 너에게 권한다.>--주님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심정으로 충고를 하십니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세속적인 재물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금'으로 '진짜' 부자가 되라는 충고입니다.'불로 정련된 금'은 '순수한 믿음'을 상징합니다.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하느님 앞에서 부끄럽게 되지 않도록 덕행(흰옷)을 쌓으라는(입으라는) 충고입니다. 즉 하느님의 마음에 들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여기서 '안약'은 신앙인의 '영적 혜안'을 뜻합니다. 그래서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라는 말은 올바른 믿음으로 영혼의 눈을 뜨라는 뜻입니다. 또 제대로 볼 수 있게 하라는 말은 영혼의 눈을 떠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과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알아보고, 제대로 실천하라는 충고입니다.

18절은 라오디케이아의 상황을 반영한 표현으로서 당시 그곳에서 유명했던 은행, 모직물, 안약 등 세속적인 재물이 아니라 참된 영적인 보화로 신앙생활을 쇄신하라는 충고의 말씀입니다. 금, 흰옷, 안약을 주님에게서 사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사실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파는 것이 아니고 은총의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은총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가 자유롭게 결정하고 선택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강제로 주는 것이 아니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사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19절..<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이 말은 잠언 3장 12절과 비슷한데, 주님께서 책망하고 징계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회개란 주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20절..<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이 말은, 요한복음 14장 23절에 있는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라는 구절과 비슷한 표현인데 주님께서 사랑을 가지고 몸소 찾아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은 구약성경 아가서 5장 2절에서 연인의 문을 두드리는 내용과도 비슷합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사랑에 대한 응답은 사랑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은 '문을 열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문을 열고 예수님을 맞아들여야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은 다음에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이 구절은 천국의 잔치를 상징하고, 그리스도와 하나 됨, 영원한 생명의 잔치를 상징합니다. 또 성체성사(성찬의 전례)를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21절-22절..(21)<승리하는 사람은, 내가 승리한 뒤에 내 아버지의 어좌에 그분과 함께 앉은 것처럼, 내 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해 주겠다.> (22)<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승리하는 사람이 받을 보상은 '하느님의 어좌'에 앉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리한 뒤에', 즉 고난을 겪은 뒤에 '아버지의 어좌에 그분과 함께' 앉았습니다. 즉 하느님의 영광과 통치권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승리하는' 신자들에게 당신의 통치에 참여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은 마태오복음 19장 28절(루카복음 22장 30절)에도 나오는 약속입니다.

라오디케이아 교회는 다른 여섯 교회와는 달리 칭찬이 하나도 없는데, 이 교회의 가장 큰 잘못은 '미지근함'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미지근한' 모습의 교회, 또 그런 모습의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오늘날의 우리도 반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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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근함에 대하여" 묵상>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뜨거워져야 합니다.연극을 보면 주인공에게는 무대를 장악하는 뜨거움, 열정이 있는데,조연과 단역배우들에게서는 그런 것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인공이기 때문에 더 열정적인 모습이 되고단역이기 때문에 소극적인 모습에서 멈추고 마는 것일 수 있습니다.'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누구나 다 주인공입니다. 자신의 삶에서 제대로 주인공 구실을 하려면 뜨거워져야 합니다.뜨거운 사람만이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미지근한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마저 조연이나 단역으로 그칩니다.자신의 운명은 뜨거운 사람만이 개척하고 만들어 갑니다. '운명, 숙명, 팔자'라고 주저앉는 사람은운명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그것은 미지근한 사람들의 몫입니다.뜨거운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갑니다.그리고 운명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됩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이고 의지와 노력의 문제입니다.뜨겁고 미지근한 차이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죽은 것도 아니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닌그런 미지근한 모습의 삶은 환경이나 여건 때문이 아닙니다.살아보려는 의지도 없고 죽기까지 덤벼드는 의욕도 없다면자신의 인생에서 평생 조연 구실만 하고미지근하게 주저앉아서 팔자타령만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습니다.십자가의 예수님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예수님은 십자가를 선택하고 과감하게 나아갔습니다.바오로의 열정적인 선교활동은 성격 때문이 아니라자신이 선택한 삶, 자신이 선택한 진리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노예처럼 억지로 끌려간 삶이 아니라스스로 만들어 간 개척자의 삶이었습니다.활화산처럼 뜨겁게 살다가 후회 없이 가는 사람만이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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