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대충 믿기 - 21. 신앙도 모자처럼...
2012. 10. 3. 오전 9: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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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대충 믿기 - 21. 신앙도 모자처럼...
이번 올림픽 때 모 방송국의 여자 아나운서(앵커였나?) 하나가 첫 방송부터 머리에 모자를 쓰고 나와 방송을 하는 바람에 화제가 됐었다.
영국이란 나라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성이 모자를 쓰는 것이 거의(?) 격식처럼 돼 있다 보니 이 여자 아나운서도 그 분위기를 따랐나 보다. 듣기로는 출국 전부터 담당 코디네이터랑 충분히(?) 상의를 했고 그 결과물로 모자를 쓰고 방송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무려 17개나 되는 모자를 준비했다니 구겨지지 않고 무사히 런던까지 옮겨졌다면 이 아나운서 짐이 만만치 않았을 게다.
문제는 첫 방송 때 - 무슨 경기가 화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 검은 색 계열의 옷차림에 같은 톤의 모자를 쓰고 나왔나 본데 그때 방송을 본 네티즌들의 반응이 좀 싸늘했나 보다.
무슨 장례식 참석한 줄 알았다느니, 아나운서가 아나운서 답지 못하고 연예인 같다느니 하는 반응이 거셌고, 일부에서는 예쁘기만 한데 뭘 트집이냐는 옹호론도 있었나 보다.
그래선지 나도 몇 번은 모자를 쓴 채 방송하는 걸 본 것 같은 이 아나운서가 어느 방송분부턴가 모자를 쓰지 않고 방송을 하더라...
참 예쁜 얼굴이었는데...
내가 본 방송분에서는 어쨌든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는 느낌을 가지긴 했다.
그래도 개성이고, 어차피 모자를 쓴 채 방송을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라면 굳이 그이를 씹을 필요까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울리든 말든 말이다.
그 아나운서는 꽤나 부담이 됐던 모양이다.
누가 말렸는지 아님 자기가 스스로 결정했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어쨌든 모자를 더이상 쓰지 않은 걸 보니 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모자를 벗고 방송하는 그 아나운서를 보면서 '나'는 한결 나아 보인다고 느꼈고, 그 얼굴 표정에서 이전 보다는 좀 더 편안한 웃음을 느끼게 됐다. 당사자의 심리까지야 내가 알 바도 아니고 알 수도 없고...
신앙도 이처럼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어차피 내가 가진 신앙에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내가 가진 신앙으로 내 일생을 바칠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내가 가진 신앙 때문에 그 가르침을 다 따를 게 아니라면...
어떤 때에는 쓰고, 어떤 때에는 좀 벗어 버리면 안 될까?
내 마음 속에 '무서운 하느님'이 계신다고 굳게 믿으면서도 그 '하느님'의 명령을 버젓이 어기고,
내 마음 속에 '사랑의 예수님'이 계신다고 굳게 믿으면서도 그 '예수님'을 빗대 상대를 씹고,
내 행동을 '전지전능한 하느님'께 맡겼다고 굳게 믿으면서도 그 '하느님'과 전혀 무관한 삶을 살고,
내 행동은 '사랑의 예수님'이 이끄신다고 굳게 믿으면서도 그 '예수님'과 전혀 무관한 말을 한다면...
이쯤에서 그 신앙을 잠깐이라도 벗어 놓는게 하느님이나 예수님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이쯤에서 그 신앙을 잠깐이라도 포기하는 게 나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파티용 모자를 썼다가 남의 눈 때문에 벗지도 못하고 장례식장에 들어가 눈물을 찍느니,
야구 모자를 둘러썼다가 남이 멋있어 보인다는 바람에 벗지도 못하고 파티장에 들어가느니,
장례식장에 걸맞는 모자가 없으면 그냥 쓰고 있던 파티용 모자를 벗는 게 예의가 아닐까? 그 고인에게?
파티용 모자를 준비하지 못했으면 그냥 쓰고 있던 야구 모자를 벗는 게 예의가 아닐까? 그 호스트에게?
나는 지금 쓰고 있는 모자가 참 버겁다.
신앙도 모자처럼 썼다 벗었다 하고 싶다.
내 눈에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모자를 쓰고 파티장이든 장례식장이든 야구장이든 마구 돌아다니는 것 같아 버겁다.
욕을 직싸게 먹고라도 열 일곱 개의 모자를 다 쓰고서야 방송을 마치는 아나운서 보다는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 중에서 부담스러워하는 몇몇을 위해 기꺼이 남은 모자를 포기한 그 아나운서가 예쁘다.
내 신앙은 언제쯤 새 걸로 바꿔 쓸 때가 올까? 언제쯤 내 민머리를 드러낼 때가 올까?
오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