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너댓 개 정도, 그 다음엔 예닐곱 정도만 쓰고 말려고 했는데 이놈의 손꾸락이 어떻게 됐는지 같은 제목이 하나 둘 더 늘어나 번호를 붙여 봤다. 지금까지 총 열일곱 개더라...
오늘은 좀 그지(?)같은 글을 쓸까 해서 번호를 붙이니 18이다. 무슨 조화람? 18...
오늘의 대충 믿기 주제는 '너무 빠지면 맛이 간다...'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다른 몇 군데에서 종교 관련 글을 썼었다. 바로 직전이 주교회의 게시판이었고...
참으로 신실한 신자들을 참으로 많이도 만났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니 한 시도 빠짐없이 하느님을 불러제끼고, 예수님을 노래하고, 성모님을 찬양하더라. 찬민가? 하여튼...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맛이 가 있더라는 것. 상당수란 말은 대다수와는 다른 뜻이라 하니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실 것.
대화를 나누든 아님 그냥 그들의 글을 읽기만 하든 도대체 이들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기 힘든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이다.
그들 중 대다수는 요한묵시록에 푹 빠져있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워낙 난해하고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가 없기에 교회에서조차 함부로 다루지 않는 그 어렵디 어려운 요한묵시록을 줄줄이 꿰고 그 의미를 설명하는 이들을 보면 어느 신학자, 사제도 코를 싸매고 숨을 정도다.
그런데 그들의 해석을 하나씩 들여다 보면 정말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당장 내일이라도 종말이 다가올 것 같고, 오늘 밤에 자리에 들기라도 하면 내 몸이 들려 행복한 하늘나라로 실려갈 것만 같다.
그들은 그런 해석(?)을 앞에다 깔아놓고는 곧바로 '마라나 타'를 외친다.
문제는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인다는 것.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대화 내용이라 지금 무슨 말을 하느냐고 물을라치면 곧바로 사탄아 물러가라로 대응한다. 논리고 자시고도 없이 그저 자기 얘기로만 그 넓고 넓은 공간을 채우기 일쑤.
또다른 공통점은 참 행복해 보인다는 것.
그 행복이 일상의 행복이 아니라, 오직 성경책에서 하느님 말씀의 진수를 발견한 양 두 손 꼭 모으고 기돗발만 세우면서 행복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걸 지켜보는 사람이 혀를 끌끌 차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서술방식이 있다. 평균적인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만 돼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유치한 단어와 구성들... 제대로 적은 건 딱 하나, 성경 구절밖에 없고. 도대체 뭘 적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글을 놓고 참 행복해한다. 자기는 자기 글을 이해하나 보지?
묵시록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하는 사람은 비단 이곳에만 있는 게 아니다. 또한 가톨릭 사이트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개신교 공간에는 무지하게 많다. 대부분 맛이 가 있다.
꼬불꼬불하게 주름이 잔뜩 낀 게 정상이라는 사람의 뇌...
아마 성경, 특히 묵시록을 너무 읽었는지 아마 자기 뇌에 다림질을 했나 보다. 아무 생각이 없이 그저 성경, 성경만 외친다. 그리곤 간절한 기도와 묵상... 이런 이들과 마추칠 때는 시쳇말로 멘붕에 빠지기 일쑤다.
뭐라도 담으려면 그릇이 중요하다.
1 리터짜리 그릇에 100 리터를 들이부으면 그릇이 넘치는 법이다. 뇌용량도 마찬가지다. 글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뇌용량이 중요하다.
도무지 담아내지 못한 내용을 그 작디 작고, 평평할 대로 평평한 자기 뇌에 담으려 했으니 맛이 가지 않을 방도가 없다. 그 넘친 내용물은 눈을 마비시키고, 귀를 마비시키고 종내는 입을 마비시킨다. 그러니 맛이 간 말들이 주르르 흐를 수밖엔 없는 노릇이다.
그런 건 그나마 좀 낫다. 자기 혼자 실실대는 것이니 가까이만 가지 않으면 해가 될 게 전혀 없다. 그들이 내게로 다가오지 않으면 그 또한 해가 될 게 전혀 없다.
그러나 그런 용량 초과의 신앙심을 가지고 마치 선생이나 된 듯이, 지도자나 된 듯이, 함부로 씨부려대는 이들을 볼 때는 참 난감하다.
온갖 지성과 신앙을 오로지한 듯이 에헴하면서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느 뒷골목 양아치, 그것도 아직 교복을 벗지도 못한 양아치처럼 말하고 행동하니 역겹기 짝이 없다.
좀 지켜보면 완전히 맛이 간 걸 스스로 확인시켜주니, 내가 따로 너 맛이 갔어라고 굳이 말해 줄 필요도 없다.
예수님 믿기...
자기 그릇을 먼저 살피자.
온갖 허위와 위선과 아집으로 가득차 있던 뇌와 가슴을 제대로 씻은 다음에 성경이든 신앙이든 받아들이자.
입 속에 든 밥알 보다도 많은 수의 욕지거리를 한숨에 내뱉고는 곧바로 예수님 만세, 성모님 만만세를 외치니 맛이 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성경이 그렇듯, 예수님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준비도 하지 않고 덜컥 들이마셨다가는 체하기 십상이고 그래서 그는 맛이 갈 수밖에 없다.
그냥 대충 대충...
받을 수 있는 만큼만 받아 즐기자.
조금이라도 양이 줄었다 싶으면 내 뇌와 가슴에 허위와 위선과 아집의 때가 꼈구나, 그래서 용량이 작아졌구나 하고 청소를 시작하자. 또 받아들이기 전에 말이다.
그 청소 작업을 나는
회.개.라고 이름붙인다.
뇌와 가슴의 용량을 늘이는 유일한 청소 작업.
컴퓨터는 수시로 청소하면서 자기 뇌와 가슴은 전혀 청소하지 않는 맛이 간, 그것도 꽤나 맛이 간 친구들이 좀 많다, 여기는.
이게 오늘 열여덟 번째 예수님 대충 믿기의 주제다.
숫자가 참 야리꾸리하다. 오늘 따라 18이 뭐냐, 18이... 제길.
오늘은 좀 그지(?)같은 글을 쓸까 해서 번호를 붙이니 18이다. 무슨 조화람? 18...
오늘의 대충 믿기 주제는 '너무 빠지면 맛이 간다...'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다른 몇 군데에서 종교 관련 글을 썼었다. 바로 직전이 주교회의 게시판이었고...
참으로 신실한 신자들을 참으로 많이도 만났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니 한 시도 빠짐없이 하느님을 불러제끼고, 예수님을 노래하고, 성모님을 찬양하더라. 찬민가? 하여튼...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맛이 가 있더라는 것. 상당수란 말은 대다수와는 다른 뜻이라 하니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실 것.
대화를 나누든 아님 그냥 그들의 글을 읽기만 하든 도대체 이들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기 힘든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이다.
그들 중 대다수는 요한묵시록에 푹 빠져있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워낙 난해하고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가 없기에 교회에서조차 함부로 다루지 않는 그 어렵디 어려운 요한묵시록을 줄줄이 꿰고 그 의미를 설명하는 이들을 보면 어느 신학자, 사제도 코를 싸매고 숨을 정도다.
그런데 그들의 해석을 하나씩 들여다 보면 정말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당장 내일이라도 종말이 다가올 것 같고, 오늘 밤에 자리에 들기라도 하면 내 몸이 들려 행복한 하늘나라로 실려갈 것만 같다.
그들은 그런 해석(?)을 앞에다 깔아놓고는 곧바로 '마라나 타'를 외친다.
문제는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인다는 것.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대화 내용이라 지금 무슨 말을 하느냐고 물을라치면 곧바로 사탄아 물러가라로 대응한다. 논리고 자시고도 없이 그저 자기 얘기로만 그 넓고 넓은 공간을 채우기 일쑤.
또다른 공통점은 참 행복해 보인다는 것.
그 행복이 일상의 행복이 아니라, 오직 성경책에서 하느님 말씀의 진수를 발견한 양 두 손 꼭 모으고 기돗발만 세우면서 행복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걸 지켜보는 사람이 혀를 끌끌 차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서술방식이 있다. 평균적인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만 돼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유치한 단어와 구성들... 제대로 적은 건 딱 하나, 성경 구절밖에 없고. 도대체 뭘 적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글을 놓고 참 행복해한다. 자기는 자기 글을 이해하나 보지?
묵시록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하는 사람은 비단 이곳에만 있는 게 아니다. 또한 가톨릭 사이트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개신교 공간에는 무지하게 많다. 대부분 맛이 가 있다.
꼬불꼬불하게 주름이 잔뜩 낀 게 정상이라는 사람의 뇌...
아마 성경, 특히 묵시록을 너무 읽었는지 아마 자기 뇌에 다림질을 했나 보다. 아무 생각이 없이 그저 성경, 성경만 외친다. 그리곤 간절한 기도와 묵상... 이런 이들과 마추칠 때는 시쳇말로 멘붕에 빠지기 일쑤다.
뭐라도 담으려면 그릇이 중요하다.
1 리터짜리 그릇에 100 리터를 들이부으면 그릇이 넘치는 법이다. 뇌용량도 마찬가지다. 글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뇌용량이 중요하다.
도무지 담아내지 못한 내용을 그 작디 작고, 평평할 대로 평평한 자기 뇌에 담으려 했으니 맛이 가지 않을 방도가 없다. 그 넘친 내용물은 눈을 마비시키고, 귀를 마비시키고 종내는 입을 마비시킨다. 그러니 맛이 간 말들이 주르르 흐를 수밖엔 없는 노릇이다.
그런 건 그나마 좀 낫다. 자기 혼자 실실대는 것이니 가까이만 가지 않으면 해가 될 게 전혀 없다. 그들이 내게로 다가오지 않으면 그 또한 해가 될 게 전혀 없다.
그러나 그런 용량 초과의 신앙심을 가지고 마치 선생이나 된 듯이, 지도자나 된 듯이, 함부로 씨부려대는 이들을 볼 때는 참 난감하다.
온갖 지성과 신앙을 오로지한 듯이 에헴하면서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느 뒷골목 양아치, 그것도 아직 교복을 벗지도 못한 양아치처럼 말하고 행동하니 역겹기 짝이 없다.
좀 지켜보면 완전히 맛이 간 걸 스스로 확인시켜주니, 내가 따로 너 맛이 갔어라고 굳이 말해 줄 필요도 없다.
예수님 믿기...
자기 그릇을 먼저 살피자.
온갖 허위와 위선과 아집으로 가득차 있던 뇌와 가슴을 제대로 씻은 다음에 성경이든 신앙이든 받아들이자.
입 속에 든 밥알 보다도 많은 수의 욕지거리를 한숨에 내뱉고는 곧바로 예수님 만세, 성모님 만만세를 외치니 맛이 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성경이 그렇듯, 예수님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준비도 하지 않고 덜컥 들이마셨다가는 체하기 십상이고 그래서 그는 맛이 갈 수밖에 없다.
그냥 대충 대충...
받을 수 있는 만큼만 받아 즐기자.
조금이라도 양이 줄었다 싶으면 내 뇌와 가슴에 허위와 위선과 아집의 때가 꼈구나, 그래서 용량이 작아졌구나 하고 청소를 시작하자. 또 받아들이기 전에 말이다.
그 청소 작업을 나는
회.개.라고 이름붙인다.
뇌와 가슴의 용량을 늘이는 유일한 청소 작업.
컴퓨터는 수시로 청소하면서 자기 뇌와 가슴은 전혀 청소하지 않는 맛이 간, 그것도 꽤나 맛이 간 친구들이 좀 많다, 여기는.
이게 오늘 열여덟 번째 예수님 대충 믿기의 주제다.
숫자가 참 야리꾸리하다. 오늘 따라 18이 뭐냐, 18이... 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