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전에는 성지순례를 자주 다녔었다. 휴가를 성지순례로 가면 여러 가지 이득이 있다. 일단 어디로 가고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을 할 필요가 전혀없다. 성지이니 평소에 못했던 기도도 실컷 할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게 성지순례는 피정과 같은 의미였다. 그러다보니 같은 장소를 몇 번을 가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그런 장소 중에 하나가 ‘투르키’다. 동과 서를 연결하는 터키는 옛문화가 비교적 잘 보존된 중요한 지역이며, 교회사에서도 상당한 비중이 있었던 곳이다. 사도 바오로의 주요 선교지 였었고 431년 에페소에서는 성모님에 관한 중요한 교리를 확정한 공의회가 열렸었다. 현재 이름으로 이스탐불에 있는 6세기에 완성된 현재의 성 소피아 성당은 베드로 성당 건립 이전까지 최고의 성당이었으며, 1054년에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열된 현장이기도 하다.
성지순례하는 동안에 인상이 남은 장소로 성모님께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셨던 에페소의 성모 경당이 으뜸 이었다. 경당 입구에 한국어로 ‘성모 마리아의 집’이라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어 더욱 반가웠다. 안내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사랑하던 제자인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며 맡기셨다.(요한 19,27) 요한은 성모 님을 모시고 에페소로 이사와서 살면서 전교를 했다고 한다. 에페소 3차 종교 회의록에 요한이 산 위에 성모님을 위해서 집을 지어드렸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집의 위치는 잊혀지고 폐허가 되었다. 1878년 케서린 에메리히라는 독일 수녀 꿈속에서 계시받은 내용을 <성모 마리아의 생애>로 만들었는데 여기서 성모 마리아의 집 위치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1891년 나자렛 신부가 탐사반을 이끌고 책을 근거로 집을 발견했는데 위치와 모습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1961년 교황 요한 23세는 성모 마리아의 집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키고 이곳을 성지로 공식 선포했다.
함께 순례를 했던 한 교우가 주변 분들에게 주실 선물로 조그만 성모 마리아상을 50개나 샀다. 이것을 본 내가 그 분께 물었다. “자매님, 그것 무겁지 않으세요?” 그런데 그분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신부님! 성모님인데 무겁긴 왜 무거워요?”
미사를 봉헌하는 중에 그 분의 말씀이 내내 머리 안에서 머물렀다. 성모님이니까 무겁지 않다는 교우의 말은 바로 그 자매님의 신앙심을 대변해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여러개면 제법 무게가 나갈테지만 성모님상이라서 무거운 짐이 아니라는 것이며, 또한 선물을 나눠줄 교우들에 대한 사랑으로 50개나 되는 성모상이 전혀 무겁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기야 사랑의 무게를 감히 어떻게 저울로 잴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