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아버지 뜻대로

2022. 10. 20. 오전 9:14:39

글자

태오 복음 16장의  핵심 내용은 베드로는 예수님이 당신은 많은 고초를 겪은 후 십자가에서 죽게 될 거라고 하시니까 펄쩍 뛰며 반대한다. 언뜻 보면 베드로의 깊은 충정이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베드로 역시 하느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의 눈으로만 보았기에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반대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심하게 꾸짖으시고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면 자신의 뜻을 버려야 하고, 자신을 죽여야 하는데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하느님의 뜻은 인간의 생각과 다를 때가 너무나도 많이 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고 하면서 의외로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내세워 자신의 일을 정당화하지만, 많은 경우 그들이 내세우는 ‘하느님의 뜻’은 사실 알고 보면 ‘자신의 뜻’이다. 그들은 자신을 하느님의 뜻에 맞추려 하지 않고 하느님을 자신의 관점에 맞추려 한다.

몸이 조금만 아프고 피곤하면 하느님께서 이해해 주실 것이라면서 주일 미사를 쉽게 빠지고, 뻔히 잘못된 행동을 하면서도 남들도 그렇게 하니까 라는 핑계로 내 행동을 합리화 한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나 공동체를 보면서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꽁무니를 뺀다. 마치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면서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고 있지만 오히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생활성가 중에 ‘아버지 뜻대로’라는 노래가 있다.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자신도 예수님을 따라서 참 사도로 거듭 태어나겠다는 내용의 성가이다.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지곤 한다. 나를 위해 돌아가신 그분을 미약한 내가 감히 따르려하니 두려운 마음이 들지만 그럼에도 나를 부르고 계시는 예수님을 위해서라도 용기를 내서 따라가리라는 결심을 늘 하곤 한다.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뜻을 몰라서 못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이런저런 핑계거리를 만들면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스스로 위로하는데 무척이나 익숙해져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따르려면 이런 악습을 과감하게 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모범적인 행동을 보여주신 분들이 있다. 성인들과 자신의 소중한 목숨까지도 기꺼이 주님을 위해서 내어 놓으신 순교자들이다. 비록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살았던 그 분들의 삶이 가치를 발하는 요즘이라고 생각된다. 코로나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주님을 멀리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제발 자신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묵주기도를 봉헌해본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임신부님 묵상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