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자의 최고의 의무는 미사봉헌임을 부인하는 신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바로 '성찬의 전례'인데 이 전례에서 우리는 영성체를 모신다. 그런데, 왜 성체는 동그란 모형으로 되어 있을까? 십자가의 모양을 할 수도 있고, 하트 모양도 할 수 있는데, 왜 동그란 모양일까?
원[동그라미]라는 것은, 수학적 정의로 풀이하면, 한 점으로부터 '똑같은' 위치에 있는 점들을 모아 놓은 것 을 선으로 연결된 형태 라고 말을 한다. 이 점에서, 똑 같은 위치라는 건,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똑 같이 사랑하신다고 해석 할 수 가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성체의 모양이 어떤지는 몰라도, 여기 미국에서는 가운데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여기서도
여러가지로 해석 될 수가 있다.
십자가가 새겨져 있음은, 그 밀 떡이 바로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래서, 우리는 성체성사전에 이웃들과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평화를 빕니다),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다.'라고 예수님을 모신다. 그 새겨진 십자가을 따라서 성체가 4등분으로 쪼개어 질 수 있는데, 이 4등분이라는 뜻은 두가지로 의미할 수가
있을 것이다.
1. 성부, 성자, 성령 그리고 내 자신
2. 나와, 두 이웃들, 그리고 예수님
"단 두세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을 것이다." (마태 18, 20)
언젠가, 손님 신부님으로 오셨던 정 광진 브라이언 신부님께서 성체성사 때 하신 말씀이 있다. "믿는 이들은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에 죄를 없애시는 분,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이 '믿는 이들은 보라' 라는 말에 반성을 많이 했고, 예수님을 믿는 자 들만이 성체를 모실 자격이 있음을 그 한마디로 압축하셨다.
올해에는 성소의 해 와 성체성사의 해 이다. 한달 가량 남은 사순절이지만, 이 기간만이라도성체를 모시는 순간, 어떤 형태의 기도 보다는, 예수님께 하고싶은 말, 짜증, 심통, 아양등을 부리며 예수님께 더욱 솔직히 나아가고, 예수님을 또 다시 못을 박지 않는 내 자신이 될 수 있도록, 이런 우리 자신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과 포도주를 기쁘게 받아 모시자.
원[동그라미]라는 것은, 수학적 정의로 풀이하면, 한 점으로부터 '똑같은' 위치에 있는 점들을 모아 놓은 것 을 선으로 연결된 형태 라고 말을 한다. 이 점에서, 똑 같은 위치라는 건,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똑 같이 사랑하신다고 해석 할 수 가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성체의 모양이 어떤지는 몰라도, 여기 미국에서는 가운데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여기서도
여러가지로 해석 될 수가 있다.
십자가가 새겨져 있음은, 그 밀 떡이 바로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래서, 우리는 성체성사전에 이웃들과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평화를 빕니다),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다.'라고 예수님을 모신다. 그 새겨진 십자가을 따라서 성체가 4등분으로 쪼개어 질 수 있는데, 이 4등분이라는 뜻은 두가지로 의미할 수가
있을 것이다.
1. 성부, 성자, 성령 그리고 내 자신
2. 나와, 두 이웃들, 그리고 예수님
"단 두세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을 것이다." (마태 18, 20)
언젠가, 손님 신부님으로 오셨던 정 광진 브라이언 신부님께서 성체성사 때 하신 말씀이 있다. "믿는 이들은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에 죄를 없애시는 분,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이 '믿는 이들은 보라' 라는 말에 반성을 많이 했고, 예수님을 믿는 자 들만이 성체를 모실 자격이 있음을 그 한마디로 압축하셨다.
올해에는 성소의 해 와 성체성사의 해 이다. 한달 가량 남은 사순절이지만, 이 기간만이라도성체를 모시는 순간, 어떤 형태의 기도 보다는, 예수님께 하고싶은 말, 짜증, 심통, 아양등을 부리며 예수님께 더욱 솔직히 나아가고, 예수님을 또 다시 못을 박지 않는 내 자신이 될 수 있도록, 이런 우리 자신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과 포도주를 기쁘게 받아 모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