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2008. 3. 15. 오전 2: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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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둘째주간 레지오 훈화  주 제 :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창세기 4장 9절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사순절을 지내는 우리는 주일 복음을 따라 사마리아 여인처럼 이 시기동안 더 영적인 것을 갈망하고 사순 4주일에 나오는 소경이 치유 받듯이 영적인 것에 눈을 열며 살아가는 노력으로 부활절을 준비하도록 합시다.

 창세기 4장의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인간이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느님께 반항한 결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점차 파괴되어 각각의 사람들안에 교만, 시기 , 이기심이 인간 안에 내재되어 서로 간의 관계를 올바르게 간직하지 못하고 서로 잘난 척 하다가 형제 살해로 이어짐을 말해 줍니다.

  또한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한 개인 이야기가 아니고 카인은 농경 생활하는 가나안 민족 대표이고, 아벨은 목축업으로 유랑 생활하는 이스라엘민족 대표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유목민의 대표인 아벨의 제사 즐겨 받으셨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제물 그 자체를 좋아하시지는 않습니다. 곡식을 바치든, 양 떼를 바치든 상관없이 제물을 바치는 그 사람의 마음의 태도를 보십니다. 제물 자체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은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인격을 보시고 그 사람의 마음의 자세를 받아들이신다는 것입니다. 카인은 하느님이 아벨의 제물을 받아드린 것에 대한 질투 때문에 동생을 죽입니다. 아벨이 이 세상에서 없어지면 카인만 남기 때문에 그 때에는 하느님이 카인이 바친 제물을 좋아하실 것이라고 카인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아벨과는 관계없이 카인의 인격을 보시고 카인이 예물을 바치는 마음의 자세를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을 보시지 두 사람을 비교해서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은 나보다 남이 더 축복을 받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창조 때부터 사람은 혼자 살지 않고 더불어 살게 되었기에 자연히 비교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창세기 3장9절에서 범죄한 인간에게 ‘너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셨던 하느님은 이제 창세기4장9절에서 아우를 죽인 카인에게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심으로써 그의 양심을 일깨우고 끊임없이 인간을 지켜보시고 관심을 가지신 분으로 나타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의 범죄 때처럼 범죄 현장에 나타나시어 책임을 추궁하십니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는 하느님의 질문은 하느님 앞에서의 인간 자신의 분수와 한계와 책임을 묻는 말씀이었으나 여기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다른 형제에 대해 가져야 할 의무와 책임을 추궁하는 말씀입니다. 나만 있는 자리에 있는 것으로 다 되는 것 아니고 그도 있는 자리에 있게 도와주는 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네 아내(남편)는 어디에 있느냐? 네 이웃은 어디에 있느냐? 고 물으십니다. 사순절동안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찾아 나서야 할 것입니다. 쉬고 있다면 함께 부활축제를 지내도록 권면을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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