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일본인들
자기밖에 모르는 인색한 부자가 유대인 교수 랍비를 만났습니다. 부자는 랍비에게 인생에 교훈이 될 만한 가르침을 부탁했습니다. 랍비는 그를 창가로 데리고 가서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무엇이 보입니까?” 부자는 눈에 보이는 대로 대답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입니다.” 이번에는 부자를 커다란 거울 앞으로 데리고 가서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무엇이 보입니까?” “제 얼굴이 보입니다.”
부자는 자신의 얼굴이 보인다고 대답했습니다. 랍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부자에게 말했습니다.
“창문과 거울은 똑같이 유리로 되어 있으나, 거울 뒤에는 수은이 칠해져 있어 안보이고 자신만 보이게 되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내면이 탐욕으로 칠해진 사람은 자기밖에 모르는 불행한 존재이지요.” 외형으로 느껴지는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이 더 중요하지만 우리는 외형적인 면에만 너무 관심을 가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지난 주 3박 4일간 가족들과 함께 일본 규슈와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일본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일본을 생각하는 저의 감정은 별로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가족여행이라서 함께 어울리게 된 것이지요. 물론 이런 감정은 우리 단원 분들도 제 생각과 대동소이 하겠습니다만,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인하여 우리나라가 36년이란 긴 세월을 압제 당한 역사적 현실과 위안부 문제나 실효지배하고 있는 독도를 지금도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 데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평소 감정이 내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을 여행하면서 우리도 변하지 않으면 절대 일본을 앞설 수 없다는 교훈을 얻고 돌아왔습니다.
첫 번째, 그들의 생활이 너무 검소하다는 것입니다. 여행하는 동안 여러 곳의 식당을 들렸습니다만, 우리나라처럼 막 퍼주기 식 식당은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양도 적고 반찬의 가지 수도 단출하였습니다. 식사 후 남는 음식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약간 부족하다는 느낌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음식을 추가로 주문하면 그만큼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두 번째, 거리가 너무 깨끗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여행기간 동안 거리에서 휴지나 버려진 물건을 한 번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 자신이 국내에서는 휴지 같은 것을 지니고 가다가 지저분한 곳이 있으면 아무 죄책감 없이 그곳에 버리곤 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거리에 휴지조각 한 장도 없으니 버린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세 번째, 가이드에게서 들은 얘기로 일본은 삼나무, 대나무,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삼나무는 빨리 자라는 특성이 있고, 대나무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지반이 꺼지는 것을 방지해주며, 소나무는 비행기로 씨앗을 살포했을 때 다른 수종에 비해 활착률이 높아서 선택한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산이 많은 나라인데 모든 산이 바다처럼 파란색 초록색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국의 나무는 보호하고 필요한 목재는 수입에 의존한다고 합니다. 나무 수입국 증 세계 3위라고 하니까 백년대계가 아니라 만년대계라고 봐야겠지요. 계획적인 산림녹화를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네 번째, 쇼핑몰에 들렀는데 호객행위가 전혀 없었습니다. 상가에 들어서면 첫인사 외엔 고객이 묻는 말에만 답을 하고 충동구매 하도록 부추기지 않았습니다. 아! 이래서 일본이 선진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섯 번째, 생활이 검소하다는 것입니다. 도로에 달리고 있는 승용차의 번호판의 색깔로 소형과 중형을 구분하고 있는데, 중형에 비해 소형이 눈에 띄게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도로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외형보다는 내적이면에서, 단기적인 것보다는 장기적인 면에서, 말보다는 실천으로써 생활하고 있는 일본인들을 바라보면서 오늘 저는 유대인 교수의 “무엇이 보이느냐?”의 질문을 저 자신에게 던져봅니다. 변신은 무죄입니다. 우리 모두 내면의 거울을 바라보도록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