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마리아를 섬기죠?
실바노(Silvanus) 성인이 개신교 신자인 헨리와 함께 폴티엘 성(城)으로 향했습니다. 성인은 성당 건축비를, 헨리는 학교 건축비를 기부 받으려는 것이었습니다. 도중에 헨리가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신부님, 가톨릭 신자들은 정말 멍청합니다. 도대체 왜 마리아를 그렇게 섬기는 거죠? 그리스도 한 분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실바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성에 당도하자 황태자가 한 사람씩 불러들였고 헨리가 먼저 들어갔습니다. 얼마 후 헨리는 한 푼도 기부 받지 못한 채 낙담하며 방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바노 옆에는 이미 두둑한 돈 가방이 놓여 있지 않습니까. 헨리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신부님, 황태자는 우리에게 한 푼도 내줄 수 없다고 하던데 어찌된 일입니까?”
실바노가 환희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황태자가 한 푼도 내놓지 않으리라는 걸 미리 짐작했지요. 그래서 옆방에 계신 그의 어머니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 드렸더니 그분은 두말 않고 이 돈을 내어주셨죠.”
이어서 성인이 덧붙였습니다.
“아들은 거절해도 어머니는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법이라오. 가톨릭 신자들이 마리아를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를 이제는 알겠소?”
“이분은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 예수님의 십자가상 유언을 통해 성모님을 단지 예수님의 ‘육적인 어머니’라는 차원을 넘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영적인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또한 겸손과 순종으로 하느님께 일생을 봉헌하신 성모님의 삶은, 그 자체로 신앙인의 모범이요 구원의 표징입니다. 사람에게 있어 제일 안전한 피난처는 어머니의 품속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모님 안에서 위안을 얻고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기쁠 때는 물론 특히 힘겹고 고통스러울 때에 더욱 그분 품안으로 달려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고통,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늘 함께 하셨던 성모님, 그분은 당신 아드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우리의 아픔과 고통의 길에도 기꺼이 동행해주십니다. 아기는 혼자서 걸을 때보다 어머니 품속에 안겨 있을 때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습니다. 성모님을 ‘영적인 어머니’로 모시는 신앙인도 그러합니다.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려 들지 말고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성인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우리 스스로가 이룰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어주십니다.
성모님의 4대교리는 이렇습니다.
1) 천주의 모친 성모마리아 (1월 1일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
2) 몽소승천(蒙召昇天: 불리움을 받으셔 승천하심 /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
3) 무염시태(無染始胎: 죄의 불듬 없이 잉태)
4)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평생 동정’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개신교 신자들이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보내기도 합니다.
마르 3,31-35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라고 말하자 예수님께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시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 하신 말씀을 가지고 마리아의 동정성을 부인하며, 예수님께서도 성모님을 어머니로 존경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형제들이란 사촌이나 친척 형제들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잘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하셨는데, 루카 1,38을 보면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고 실행에 옮긴 분도 성모님이셨습니다.
마르 15,40-41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숨을 가두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그분을 따르며 시중들던 여자들이었다. 그 밖에도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라고 증언합니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형제가 있었다면 그 형제들도 옆에 있었을 것입니다. 형제들의 얘기가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은 형제가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요한 19,25-27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 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제자에게 유언을 하셨고, 그 유언을 받들어 제자가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다른 자녀가 있었다면 그들이 성모님을 모셨을 것입니다. 이는 성모님이 평생 동정이심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섬기는 것은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낳아주신 분이시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서 우리들에게 그분을 모시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주님께 간구해달라고 성모님께 청원하는 것은 성모님을 통해 아들이신 예수님께 간구하면 실바노 성인의 예화처럼 예수님께서 훨씬 빨리 들어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2,1-11의 말씀에서 예수님과 함께 혼인잔치에 참석한 성모님께서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알고 난감해 할 혼주를 가엾이 여겨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시자 예수님께서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아들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들어주실 것으로 확신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의 부탁을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으셨습니다.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라고 말씀 하시고 여섯 개의 물독에 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표징으로 성모님의 부탁에 화답을 해 주십니다. 우리가 성모마리아를 섬기고 성모마리아께 중재를 요청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이시며,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고 우리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청원하는 바를 주님이신 예수님께 중재해주시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