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 바치는 묵상기도

2016. 3. 5. 오후 3: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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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바치는 묵상기도

-박종인라이문도 신부님(가르멜 수도회)묵상기도와 성체조배에서 발췌 

우리가 참된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참다운 이웃 사랑과 자아 이탈(自我 離脫)과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이 사랑과 이탈과 겸손으로 평화가 올 때 분심 없이 하느님께로 마음을 모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도 안에서 생생하게 만나고 사랑으로 일치하는 것이 완덕입니다. 이 일치를 위해서 기도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고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말했습니다.

간추려서 말한다면 묵상 기도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과의 만남이며 대화입니다. 이 만남은 자주 단둘이서의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이 만남에서 하느님과의 사랑과 우정이 깊어집니다. 이 만남을 구송기도(口誦:소리를 내어 바치는 기도)로 할 수 있는데 이때의 구송기도는 마음으로 하는 묵상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 안에 예수그리스도께서 가까이 현존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고 또 당신을 바라 뵙는 것 외에는 더 이상 바라지 않으신다는 것과 기도는 많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송 기도라도 내가 이 기도를 누구에게 드리고 있는가, 드리는 나는 누구인가, 드리는 이 기도의 뜻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하느님과 마주 바라보며 대화하는 마음으로 잘 드리기만 한다면 하느님과 일치에 이르게 됩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신다는 것을 믿고 서로 마음을 통하며 눈이 맞은 상태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기도를 드릴 때에는 가까이 내 안에서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는 예수님과 초점이 맞은 상태에서 드리고, 성모송을 드릴 때는 성모님께서 아름다우시고 사랑스러운 어머니의 눈으로 지금 나를 가까이 바라보고 계신다고 믿으면서 드려야 참다운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기도는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나 성모님을 기도 안에서 맞대면하지 않는 상태에서 생각은 다른 데 가 있으면서 입만 움직이는 기도는 참다운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수난의 한 장면을 가지고 기도를 한다고 할 때 우선 그 수난의 장면을 내 안에 상상하면서 그 장면이 실제로 내 안에서 지금 이루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는 것은 아직 묵상이고, 수난 받으시는 예수님과 직접 눈길이 마주치는 것은 기도입니다. 이렇게 묵상을 하면서 그 장면 안에서 예수님을 신앙의 실제로 만남다면 그것은 기도 안에서 예수님을 현실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수난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올리브 동산이나 갈바리아 동산으로 갈 필요는 없습니다. 기도만으로도 이천 년 전이 아닌 지금 여기서 곧 내 마음 안에서 실제로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시공을 초월하시는 분이시므로 내가 지금 믿는 대로 해주시는 것입니다. 내 안에 가까이 계시므로 큰 소리를 지를 필요도 없고 날개를 타고 멀리 올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내안에서 나를 가까이 보고 계시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쉽게 청할 수 있고 어려움을 말씀 드릴 수 있으며 기쁨을 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와 관상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자신 안에 가까이 모시고 서로 사귀면서 하느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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