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2017. 6. 9. 오후 7: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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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용서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송현 로마노 신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예를 들고 계십니다.

중세 때 뛰어난 영성가였던 어느 사제가 하루는 용서에 대해 강론했습니다. 미사가 끝나자마자 장군 한 사람이 아주 다급히 사제를 찾아왔습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자신의 마음속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정말 잘 들었습니다. 백 번 옳으신 말씀이죠. 그렇지만 저는 제게 칼을 들이댄 놈을 죽어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의 말을 경청하던 사제가 이렇게 말을 건넸습니다. “장군님! 장군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좋습니다! 장군님은 칼을 들이댄 사람을 용서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만일 장군님이 죽어도 그를 용서하지 않으려면 앞으로 장군님은 죽어도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느님과 이웃 앞에 용서를 청해야 하는 부족한 존재입니다. 어느 누구도 아무런 결점과 허물없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죽어도 용서하지 않으려면 죽어도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흙이 들어가더라도 증오할 수밖에 없다면 눈에 흙이 들어가더라도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동시에 하느님에게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을 생각조차 품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은 자기 가슴을 찢어 놓은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주님이 먼저 우리를 용서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도저히 갚을 길 없는 온갖 죄의 빛을 남김없이 탕감 받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느님은 아무 조건 없이 매번 내 잘못을 용서해주십니다. 따라서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용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의 절대적인 지상 명령입니다.

행여 여러분이 죽는 날까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 끝까지 증오를 불태워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남는 것은 뼈에 사무치는 한()뿐이요 자신에게 끊임없이 독약을 투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린 채 늘 무언가에 짓눌려 답답한 가슴을 앉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능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용서하는 일입니다. 그 위대한 능력을 하느님이 먼저 보여주셨고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여러분은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 위대한 능력을 기필코 발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우리에게 똑같이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 18,35)

저는 1982년 이곳 시흥동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강북구 미아동에 살았었습니다. 1972년 시골에서 상경하여 사촌 형님과 함께 그곳에 공동명의로 집을 한 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 집을 놓아둔 채 저는 지금 살고 있는 시흥동으로 이사를 하였고, 사촌 형님이 어려운 사정 때문에 저와 한마디 상의 없이 그 집을 팔아 본이 사업자금으로 썼는데 그만 사업에 실패하여 집값을 받을 길이 막막하였습니다. 그 당시 약 1억 정도의 손실을 보게 된 것이지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당시 2,400만원에 샀으니 비교가 되는 금액이죠.

저는 아버님이 6형제라서 사촌이 많아 집안에 크고 작은 애경사가 수시로 발생합니다. 그때마다 서로 만나야 되는 데 돈 떼먹었다고 원수로 못본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1억이면 큰돈이었지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 말씀 따라 저의 부부는 그냥 포기하고 용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고름이 피가 되지 않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1억을 포기하였어도 지금까지 주님의 도우심으로 큰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용서는 용기입니다. 용서는 사랑입니다 용서는 하느님 마음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주어야 주님께서도 내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다윗의 탑 단원들도 용서의 달인이 되어 주님 은총 충만히 받으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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