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엽서
사람들은 너무 빨리 달리는 것 같습니다. 단지 앞으로 달려가는 게 목적인 양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달리느냐고 물으면 남들도 다 달려가기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들이 달리니까 달린다는 말은 자신의 참 모습을 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당신도 이들 속에 끼어 있지는 않은지요? 당신은 당신에게 물어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왜 이렇게 달리는지, 어디를 향해 달리는지를 말입니다.
미국의 어느 방송인의 이야기입니다.
폐기 넘치는 이 젊은이는 방송 활동과 출세에 여념이 없다보니 주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습니다. 어느 날 젊은이의 어머니가 “얘야, 너무 빨리 달리지 마라. 그러면 좋은 풍경을 보지 못한단다.”라고 쓴 풍경화 엽서 한 장을 보내왔습니다.
어머니의 엽서를 다 읽고 난 젊은이는 그제야 자신이 ‘과속 질주’했다는 것을 알고 인생을 정비하며 주위의 아름다운 것들을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우리네 삶은 그렇게 비정하고 억압적인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돌리고 여유를 갖는다면 귤만한 헤드라이트를 달고 달리는 자동차에도, 발끝에 차이는 작은 돌멩이에도, 손때 묻은 여러 물건에서도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답니다. 오늘 달리기를 멈추고 당신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떤지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정신없이 달리는 것도 한번쯤 보는 것은 어떤지요.
-유영 지음 ‘행복을 만들어주는 책’에서 옮김-
오늘 10시 미사는 새로 오신 주임신부님(김재화 시몬)께서 첫 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그런데 강론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어제 복음 말씀이 무엇이지 기억하시는 분 계세요?”
이 말씀에 대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어제 복음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미사에 참례하여 복음을 묵상하고, 보좌신부님의 강론을 들었는데도 어제의 복음 말씀이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날마다 쳇바퀴 돌듯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제 모습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열심히 미사에 참례하고 복음 말씀을 듣고, 묵상하면서도 그 시간이 지나가면 가슴 속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앞의 예화에서처럼 옆을 돌아볼 줄 몰랐습니다. 그냥 그 시간만 열심히 산 것처럼 남에게 보여주는 삶을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했습니다. 달리느라고 좋은 풍경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집에 돌아와 서재에서 ‘어머니의 엽서’라는 짧은 글을 읽고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떠올라 다음 주 레지오 훈화로 택했습니다.
어제(제22주간 목요일) 복음은 루카복음 5장 말씀으로서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배에 오르시어 군중들에게 가르치시다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허탕을 치고 빈 배로 돌아오고 있는 시몬에게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 4)”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시몬 일행은 예수님 말씀 따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고 배가 가라앉을 지경에 이르도록 많은 물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주님,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 8)”라고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 10)”라는 말씀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도 이젠 하루의 삶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나를 따라라.(루카 9, 59)” 라고 하시며 당신의 말씀대로 살면 곧 평화를 주신다고 하십니다.(요한 14, 27 참조)
여유 있는 삶이 오히려 행복을 향유(享有)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미사에 참례할 때도 시간에 쫓겨 아무 준비도 없이 시간만 때우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미사에 참례하기 전에 지난 시간을 주님의 복음 말씀대로 살았는지 살펴본 다음에 참회의 시간에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는 잘못을 반성하고 통회(痛悔)하며 가슴을 쳐야 하겠습니다.
미사 시간에 들은 복음 말씀과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양식으로 하여 일주일을 잘 살았는지 되돌아보고 그렇지 못했다면 자비송을 아무 죄책감 없이 바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도 인사를 나누는 형제자매의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형식적으로 고개만 끄덕여 ‘평화를 빕니다.’라고 빈말은 하지 않고 있었는지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미사를 마치고 일상을 살면서도 우리는 거룩한 성체(聖體)를 내 몸 안에 모셨으므로 거룩한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루카 5, 38)”입니다. 우리의 사고(思考)도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바꿔나가도록 합시다. 앞만 보고 달리지만 말고 옆에 있는 형제자매님들도 돌아다보면서 함께 가시도록 합시다.
“얘야, 너무 빨리 달리지 마라. 그러면 좋은 풍경을 보지 못한단다.”
주님, 저희 안에 평화를 내려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