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른이 운명하시면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천년만년 살 것처럼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헐뜯고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엊그제 우리 고유의 명절 한가위를 맞아 세상을 떠나신 조상님을 기억하며 차례를 지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조상님들이 계신 그곳으로 가야할 몸들입니다. 아래 글을 묵상하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를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길 떠나는 인생’
(받은 글입니다.)
"언제 떠나는지 서로 몰라도
가다보면 서로 만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애절한 사연 서로 나누다 갈길 돌아서면 어차피 헤어질 사람들
길 떠나는 날, 더 사랑해 줄 걸 후회할 것인데
왜 그리 못난 자존심으로 용서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하고 미워했는지...
사랑하며 살아도 너무 짧은 시간
베풀어주고 또 줘도 남는 것들인데
웬 욕심으로 무거운 짐만 지고 가는 고달픈 나그네 신세인가!
그날이 오면 다 벗고 갈 텐데
화려한 명예의 옷도, 자랑스러운 고운 모습도
더 그리워하면 더 만나고 싶고, 더 주고 싶고,
보고 또 보고 따뜻이 위로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왜 그리 마음에 문만 닫아걸고 더 사랑하지 않았는지...
아니 더 베풀지 못했는지...
천년을 살면 그리할까, 만년을 살면 그러리오.
어차피 저 인생의 언덕만 넘으면 헤어질 것을
미워하고 싸워봐야 상처 난 흔적만 훈장처럼 달고 갈텐데...
이제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이제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사랑해야지.
우리는 모두 다 길 떠날 나그네들이라네."
우리가 서로를 의지하고 믿고 신뢰하며 사랑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도리가 있습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생각, 말, 행동, 습관, 인격을 조심하라고 합니다.
♣생각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말이 되기 때문이다.
♣말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행동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습관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인격이 되기 때문이다.
♣인격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천년만년 살 것 아니고 잠시 잠깐 머물다 가는 이 세상,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고 못난 자존심 다 버리고 베풀며, 내 앞에 있는 사람 결점을 찾으려 말고 좋은 점 찾아 칭찬을 아끼지 말 것이며, 착한생각을 행동으로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여기 ‘노년의 지혜’라는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아주 오래전 제가 후원했던 경기도 광주 양로원 구들장 신부님이 운영하는 ‘안나의 집’ 소식지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 앞서 열거한 ‘우리는 길 떠나는 인생’과 통하는 글이라 여겨 소개합니다.
"늙은이가 되면 설치지 말고,
미운소리, 우는소리, 헐뜯는 소리,
옛날의 내자랑, 그리고 군소리랑 하지 말고,
그저 그저 남의 일에 칭찬만 하소.
묻거들랑 가르쳐 주기는 하나, 알고도 모른 척 어수룩하소.
그렇게 사는 것이 평안하다오.
이기려 하지 마소.
져 주시구려. 어차피 신세질 이 몸인 것을
젊은이들에게 한 걸음 물러서서 양보하는 것!
원만하게 살아가는 비결이라오.
언제나 감사함을 잊지 말고
어디서나 늘 고마운 마음으로 지내시구려.
돈, 돈의 욕심을 버리시구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 하여도
죽으면 가져갈 수 없는 거라오.
많은 돈 남겨 자식들 싸움하게 만들지 말고
하느님 앞에 듬뿍 듬뿍 써서 산더미 같은 덕을 쌓으시구려.
생전의 죄 값을 치루고 연옥 불을 사면(赦免) 받는 비법이라오."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 앞에 듬뿍 듬뿍 써서 산더미 같은 덕을 쌓으시구려“라는 표현은 이웃사랑을 얘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네요. 9월은 교회력으로 순교자 성월입니다. 성지순례나 성인전(聖人傳)을 통해서 신앙 선조들을 기억하고, 주님께 우리도 비록 목숨은 바쳐 순교하지는 못하더라도 사랑의 실천을 통해 순교의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십사 하고 간구했으면 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