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에 걸린 손수건
-송현 신부-
1856년 영국과 청나라 사이에 일어난 ‘애로우(arrow)호 사건’으로 유명해진 영국의 고든(c.gordon. 1833-1885)장군, 그는 청말(淸末)에 발생한 ‘태평천국의 난’(1850-1864)을 진안하는 과정에서 고국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후 그는 이집트와 수단 총독을 지내며 해외에 장기간 파견되었습니다.
수단 총독으로 재임하던 때 고든은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해 행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사들은 매일 아침 한 시간 동안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총독의 텐트 밖에 손수건이 내 결렸던 것이었습니다. 참모들은 그 표시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에는 생사가 걸린 전언(傳言)일지라도 텐트 안으로 갖고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수건이 치워진 후에야 비로소 장군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수건은 고든 장군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표시였습니다. 그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그곳이 어디든 매일 매일 어김없이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기도를 가리켜 ‘영혼을 지키는 성채(城砦, 성과 요새)라고 불렀습니다. 인간 창조 때의 그 순수한 영혼을 지켜주는 든든한 보루가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기도는 세속의 어두운 그림자로 드리워진 우리 영혼을 빛이신 하느님께로 인도하여 맑게 정화시켜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잃어버린 본래의 무구한 모습을 되찾는 시간이요, 일상의 분주함을 떠나 잃어버린 자신의 참된 자아를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그러기에 누가 열심히 성당에 다니면서도 막상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그는 공허한 신앙생활을 하는 셈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그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기도를 빼고 나면 신앙인의 특징으로 남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을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복음 선포나 기적을 행할 때가 아니라 기도 중에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 역시 기도를 통해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만나 스스로 변화시키는 시간이요, 그럼으로써 완전한 하느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순간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대로, 죄와 악의 결과로 말미암은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벽을 뚫어버리는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로 하루를 열고 기도로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 그가 바로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매일 마시는 산소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를 생활화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