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천에 있는 ‘해명 보육원’엘 다녀왔습니다. 15년 전에 함께 지냈던 본당 신부님께서 그곳에서 ‘안식년’을 지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다녀오셨던 신부님께서는 너그러우셨고, 온유하셨습니다. 물이 흐르듯이 사람들을 대해 주셨고 모든 분들이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사제 생활 3년 차였던 저는 모든 것을 ‘힘’으로만 하려고 하였습니다. 때로 아이들과 부딪치고 혼자 힘쓰다 넘어지려는 저를 잘 이끌어 주셨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습니다. 권위와 독선이 아닌 대화와 타협을 보여 주셨습니다. 화려한 언변은 아니시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말씀을 해 주셨고 드러내 놓고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늘 저의 좋은 점을 이야기 해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15년 전에 함께 사시던 수녀님께서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안식년을 지내고 계셨습니다. 안식년 동안에 여행도 하고, 취미활동을 하셔도 좋겠지만 신부님께서는 조용한 보육원에서 책을 번역하시고, 글을 쓰고 계셨습니다. 함께 살던 시절에 수녀님께서는 성당 마당 앞에 꽃밭과 텃밭을 만드셨습니다. 가끔씩 정원에 물을 주면, 수녀님께서 나중에 물을 더 주시곤 하셨습니다. 제가 주는 물은 이파리만 적셔주기 때문에 햇빛이 강한 날에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물을 보아도 그 내면의 깊이까지 보시던 수녀님이셨습니다. 온유하고 너그러우신 신부님과 자상하시고 꼼꼼하신 수녀님께서 함께 지내시는 것을 보니 정말 보기 좋은 인연이요 만남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육원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하면서 예전에 함께 살았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동창 신부들이 찾아오면 수녀님께서는 성당 마당에서 기른 채소를 씻어 주셨고 마당에 자리를 마련해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게 준비를 해 주시곤 하셨습니다. 사제와 수도자의 관계일수도 있지만 넉넉한 마음을 나누는 아름다운 인연이었습니다. 보육원의 아이들을 보시면서 수녀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아무리 시설이 좋고, 환경이 좋아도, 맛있는 음식을 주어도 아이들이 약하고 병원엘 자주 가게 됩니다.” 시설과 환경 그리고 음식으로는 채워 줄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가족과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15년 전에 함께 살았을 때는 미처 몰랐지만 저는 신부님의 따뜻한 배려와 수녀님의 기도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저를 이렇게 좋은 인연과 만남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나를 만나는 누군가도 저를 통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좋은 인연이었음을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만나는 가족, 이웃, 형제자매들은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선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음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