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사는 곳

2007. 10. 18. 오후 11:3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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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사는 곳

 

행복은 항상 비실비실거렸습니다. 그러나 불행은 무엇과 대적해도 이길 수 있는 튼튼한 몸을 가졌습니다. 힘센 불행은 틈만 있으면 행복에게 달려들어 못살게 굴었죠. 행복은 불행의 짓궂은 심술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곳 저곳으로 피해 다니다가 마침내 피할 곳이 없게 되자 하늘로 도망을 갔습니다. 하늘에 도착한 행복은 옥황상제를 찾아가 의논을 했습니다. 그러자 옥황상제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행복이 모두 이곳으로 와 있으면 너희들은 고약한 불행에게 고통을 당하지 않게 되어 좋기는 하겠지만, 세상 사람들이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사람들은 너희를 좋아하고 또 너희들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서 계속 살 수 있겠느냐? 그러니 너희들은 여럿이서 한꺼번에 내려가지 말고, 이곳에서 갈 곳을 보아두었다가 한 명씩 한 명씩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에게로 곧바로 뛰어가도록 하라. 그러면 괜히 여럿이서 한꺼번에 내려가, 갈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다가 불행에게 잡혀 괴롭힘을 당할 염려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

 

이런 까닭에 이 세상에서는 행복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고 불행은 이곳 저곳에서 숱하게 나뒹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우화에서 알 수 있듯이 행복이란 그만큼 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늘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언제 또다시 하늘로 올라가버릴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지낸 하루가 행복한 수면을 보장하는 것처럼 잘 보낸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고 말입니다.

 

행복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면 행복은 항상 나와 함께 할 것입니다.

언제라도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마태18,21~22), 예수님께서 일러주신 가장 큰 계명인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22,39), 루카 복음에서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15,11~32),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10,30~37)처럼 말씀대로 사는 것이 사랑의 실천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코린토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3장에서 사랑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곳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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