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본당의 날을 기념하며 본당 공동체와 함께 절두산 성지를 도보로 순례하였습니다. 파란 가을 하늘과 잘 정비된 하천 길을 따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니 그리 피곤하지도 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아직 1달이 지나지 않았는데 오래 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느낌이 듭니다. 그만큼 교우 분들의 기도와 사랑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길을 걸어가면서 희망과 사랑을 보았습니다. 모든 분들이 솔선수범하셨고, 머물고 간 자리도 모두 깨끗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봉사자들과 뒷마무리를 하고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잠결에 시계를 보니 6시가 넘은 것 같아 보였습니다.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성당으로 가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 내가 늦잠을 잤나보다! 그래서 신자들이 기다리다 다 가셨구나!’ 생각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시계를 다시 보니 아침 6시가 아니라 밤 12시입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혼자 웃었습니다. 왜 내가 시계를 제대로 보지 않았을까! 가끔씩 급한 성격에 먼저 행동을 하다 이렇게 웃지 못 할 일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사다리를 잘 못 걸치면 아무리 올라가도 결국은 다시 내려와야 하는데 대충 보고 사다리를 걸칠 때가 많습니다.
옷의 단추를 잠글 때도 그렇습니다. 첫 단추를 잘 잠가야 하는데 급한 김에 대충하다가 처음부터 다시 할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에 교구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사목국의 신부님들이 양평에 있는 한화콘도로 연수를 갔었는데 따로 오시는 신부님께서 용인에 있는 한화콘도로 생각을 하였고, 나중에 용인에서 다시 양평으로 온 적이 있습니다. 모두들 늦은 밤에 합류한 신부님을 보고 웃었지만 나 역시도 진실의 길, 믿음의 길 사랑의 을 벗어나 욕심과 시기의 길로 갈 때가 많았습니다. 결국 다시 돌아와야 하는 길인데 나의 나태함 때문에, 나의 교만 때문에 잘못된 길에서 좀처럼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순례의 여정에 함께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함께 한 그 길이 믿음의 길이요, 희망의 길이요 사랑의 길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