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싸우며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서 선교활동하는 이상원 신부

2007. 10. 5. 오전 1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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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마케니 교구장 비구니 주교님과 함께
가슴뿌나 공소
이상원 신부님이 미사 후 가바파 마을 주민과 함께
죽음과 싸우며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서 선교활동하는 이 상원 신부

  한국 신자들 도움 절실 

전화한번 걸려면 산 위로 2km이상 올라가야 한다.
E-메일과 인터넷은 꿈 같은 이야기이다. 의료 시설도 없다.
병에 걸리기만 하면 꼼짝없이 누워서 혼자 힘으로 병이 물러갈때까지 버터야 한다.
2002년 내란이 끝나기는 했지만 아직도 치안은 불안하다.
소년들도 총을 가지고 있어 산악지역에선 특히 조심해야 한다.
유일한 교통수단은 산악용 오토바이...
공소 한번 방문하려면 하루가 꼬박 걸린다.
성 아우구스 티노의 영성을 따르는 리꼴레또 수도회 이상원 신부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마케니 교구 카마바이 본당에서 생활하고 있다.
필리핀 동료 수도회 신부 6명이 " 더 이상 이곳에선 살수 없다" 고 돌아간 이 곳에서
이 신부는 2년째 홀로 버티고 있다. 말라리아에 걸려 죽음 직전까지 간 것도 7번....
그때마다 엄청난 고열과 오한으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밤을 혼자 지새웠다.
사람들이 모두 " 저 신부 저러다 죽겠다" 고 했지만 이 신부는 죽음의 고비를 ''기도''로 이겨냈다.
"주님께서 걸으신 길에 비하면 이런 고통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최근 어머니의 위중으로 한국을 방문한 이상원 신부는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얼굴없는 신부'' 이다.
아직 한국에서 진출하지 않은 리꼴레또 수도회 소속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한 수도회에 입회해 생활하다 1992년 우연히 필리핀을 방문했을때
리꼴레또 수도회를 접했다.
이 신부는 고민끝에 리꼴레또 수도회에 입회해 성직의 길을 걸었다.
오랜 기간 외국에서 생활한 탓에 한국말도 어눌하다.
스스로도 "한국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 고 말한다.
17살때부터 노숙자를 돌보는 일을 하는등 어려운 이웃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인 이 신부는 "시에라리온의 어려운 이웃을 기억해 달라" 고  호소했다.
이 신부가 사목하는 본당신자 300여명은 현재 우물하나 만들돈
400만원이 없어 흙탕물을 마시고 있다.
전염병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것...
학교도 없어 아이들은 배움의 기회에서 소외되고 있다.
 
내전후 극심한 식량난으로 먹을것도 거의 없다.
질병에 걸린 아이들과 여성들은 간단한 수술이나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17만원이면 수술과 입원을 통해 병을 고칠수 있는데도 많은 이들이
병원에 가지 못해 집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이 신부는 호소할 곳이 없다.
한국 진출 수도회가 아닌 탓에,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다른 한국사제 혹은 수도자들이
받는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필리핀에 있는 소속 수도회도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에라리온 국민들의 평균 수명은 40세...
그 만큼 이 신부도 질병과 신변 위험에서 예외가 아니다.
이 신부는 어렵게 방문한 한국에서 겨우 1-2명의 신자들을 만났다.
아는 신자가 거의 없기 떄문이다.
그리고 쓸쓸히 시에라리온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 이상원 신부님 선교후원
신한은행 110-077-255287
예금주   이상원 신부님.
문의  011-377-0518,   011-9910-9167
www.freetam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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