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에 있을까!! / 조재형
저는 5대째 천주교를 믿는 구교 집안에 태어났습니다. 3남 1녀 중에 3남으로 태어났고 동생은 여동생이 있습니다. 천주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지만 저는 늘 불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무능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버지는 직업이 없으셨고 돈을 벌어 오신 적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늘 저에게 커다란 산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머니는 무지하게 느껴졌습니다.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어머니는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셨습니다. 한글도 잘 모르셨고, 아버지께는 꼼짝 못하시지만 저에게는 엄하셨습니다.
형들과 동생은 못나게 느껴졌습니다. 공부를 잘 못하였습니다. 저도 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간 이상은 했는데 형들과 동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는 ‘가난’이 참 싫었습니다. 학비도 못 내고, 책도 못 사고, 굶기도 하고, 쌀 배달, 연탄 배달, 밥장사, 신문 배달하면서 지내는 것이 싫었습니다. 주인 집 아들과 싸울 때 나만 일방적으로 혼나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런 저는 신학교엘 들어갔습니다.
신학교는 너무 좋았습니다. 진리를 배우고, 하느님을 좀더 잘 알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맛있는 밥과 반찬이 좋았습니다. 화장실도 수세식이라 좋았습니다. 내 책상이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저는 이제 집은 잊고 공부하고 드디어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제 서품 받은 지 보름 만에 유행성 출혈 열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죽게 될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기경님, 주교님이 오셔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병원에 보름 입원해 있으면서 저는 병세가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와 의사 선생님의 치료와 좋은 약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때 저는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단 한 시간도 제 곁을 떠나지 않으시면서 저를 간호하셨습니다. 피를 토하면 피를 다 닦아 주셨습니다. 음식을 토해도 그것을 다 치우셨습니다. 머리에는 늘 찬 수건을 올려 주시고 제 온 몸을 주물러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건강하게 다시 다닐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과 기도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더 이상 무지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닌 저 몰래 야학을 다니셨고 검정고시도 보셨습니다. 신학은 제가 조금 더 알지 몰라도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감히 제가 따라 갈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아버지 이야기도 집안 어른들께 들었습니다. 6.25때 아버지는 좌익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는 감옥에 가게 되었는데 아버지께서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신부님과 수녀님을 살려 주셨고 나중에 신부님께서 그 사실을 이야기 하셔서 풀려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물질적인 풍요함을 주시지는 않았지만 세상의 명예를 주지는 않았지만 정직함과 강직함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했던 형님은 저보다 훨씬 부모님을 사랑하시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동생도 수녀님이 되어 수도자의 길을 가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잘나고, 제가 능력이 있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저는 부모님의 희생과 부모님의 정성을 먹고 자랐습니다. 저는 형제들의 배려와 사랑의 텃밭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는 과연 내 힘과 능력 때문에 있는 것인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2005/05/12 조재형가브리엘 신부님 글...<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