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여행 (우리본당 7구역 김춘자 키나 자매님의 글)

2007. 10. 11. 오후 8: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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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오래전부터 홀로 여행을 한 번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드디어 결심을 했다.
 
지금 육십대 후반, 더 미루다가는 다음에 기회가 되어 갈 수 있다고 해도
건강이 따라주지 못한다면 정말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의 동의를 얻어 배낭에 옷과 상비약, 소지품을 챙겨 무조건 출발했다.
 
가장 먼저 음성 꽃동네를 찾았다.
"부모 된 자는 자식이 아무리 못나도 거리에 버리지 말고,
자식 된 자는 부모가 아무리 돈이 없어도 거리에 버리지 말아"달라는
오웅진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나니 목에 무엇인가 꽉 막히는 것 같았다.
꽃동네에서는 보호하는 모든 걸인을 '가족'이라고 했다.
애덕의 집(일명 중환자실)에 배정을 받은 나는 마침 그날이 가족들 목욕을 시키는
날이어서 다른 봉사자 두 명과 함께 스물한 명을 목욕시켰다.
마음을 다해 일을 마친 우리는 잠시 앉아 숨을 돌렸다.
오늘 내가 살아 있기에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잠시나마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꽃동네에서는 신부님 묘지, 수녀님 묘지, 가족들 묘지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누구든 세상을 떠나는 순서에 따라 묘를 쓴다는 말을 듣고 또 한번 가슴이 뭉클했다.
 
꽃동네 산중텩에 아주 큰 예수님 상이 있었다.
새벽에 그 아래에 앉아 있으니 내가 정말 작아지고 내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꼈다.
죄를 짓고도 선량한 사람인 양 살아온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고, 내 욕심만
채우고 살아온 것이 염치없어 기도도 못하고 그 자리에 한 시간이 넘도록
그냥 앉아만 있었다.
 
많은 사람이 자기 몸 하나 간수할 수 없어 걸인이 되는데, 꽃동네에서는 사천여 명의
가족을 먹이고 재우고 치료해 주고 사후까지 보살펴 주니 오 신부님과 그곳에서
봉사하는 모든 분들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아끼는 분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꽃동네를 떠나 내가 좋아하는 수녀님을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갔다.
미리 연락도 하지 않고 온 나를 반갑게 맞아주신 수녀님과 함께 수녀원에서 먹고 자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언제나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김영희레나 수녀님께서
늘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린다.
그 다음은 예전부터 꼭 한 번 찾아가고 싶었던 곳, 바로 내가 태어난 곳을 찾아갔따.
언니 오빠와 뛰놀던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아무 말씀 없이 꼭 안아주시던
그 옛날이 그리워 가 보았지만 모든 것이 바뀌어 있어 많이 아쉬웠다.
그 옛날 초등학교에도 가 보니 옛 교사(敎舍)는 하나도 없고 오직 느티나무만
나를 맞아주어 오래도록 앉아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았다.
53년 전 친구들과 뛰놀며 공부하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하느님께서 과거로 한 번만 되돌려 주신다면 어릴 때 동심으로 돌아가 보고 싶었다.
한참 후 정신을 차려 초등학교 친구한테 전화를 했다.
내가 여행중인데 지금 우리가 다녔던 초등학교 운동장 느티나무 밑에 앉아 있다고
하니 깜짝 놀라면서 "너, 지금 즐거운 여행이냐, 아니면 나쁜 여행이냐?"하고
물어 한참을 웃었다.
 
그 다음 일 년에 한두 번 찾아가는 시어른들 산소를 갔다.
그곳에서 동네 사람을 만나면 큰댁에 들어가고 아니면 그냥 나오기로 마음을 정하고
갔는데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여러 곳을 거쳐 7일 만에 집에 돌아와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의견충돌이 생겼다.
젊어서는 먹고사는 데 급급하고 애들 기르고 돌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성격과 취미가 다른 것이 부부간에 큰 어려움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뒤늦게 그것을 알게 되었다.
좀 더 일찍 서로의 성격과 취향을 알았더라면 지금보다는 더 나았을 텐데... .
사람도 살아가는 연습을 할 수 있다면 시행착오가 없지 않을까?
 
이번 여행 중에 많은 걸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에 와서 뒤돌아보니
후회스러운 일도 많고 나 자신의 노력이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스스로 과거와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나 홀로 여행의 시간을 한 번쯤 가지기를 권하고 싶다.
나처럼 황혼을 바라보면서가 아니라 오십 대 초반이나 오십 대 후반에 자기 점검을
위해 여행을 한다면 남은 삶을 좀 더 가정 중심으로 여유롭고 풍요롭게,
행복한 삶이 되도록 계획할 수 있지 않을까?
 
 
 
 
 

댓글 4

  • 2007년 10월 11일 오후 11:57

    마음이 짠하네요... 제가 워낙 여행을 좋아해서...

  • 2007년 10월 12일 오전 11:23

    항상 반모임때에도 늘 온화하신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시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지긋한 목소리로 우리를 편하게 만들어 좌중을 압도하게 만드시는 좋은 말씀 많이 주시는 분이십니다.

  • 2007년 10월 12일 오후 2:33

    김키나 자매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뜻 깊은 여행이셨던 같습니다. 나 혼자만의 여행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는 몇 년 전부터 부부가 단 둘이서 행선지도 없이 둘 만이 차를 타고 3박 4일 정도 여행을 다녀오고 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현지에서 결정을 합니다. 여행을 함께 다니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다 보면 30년 이상을 함께 살아온 부부라서 통하는 것이 있고요, 새로운 사랑이 젖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혼자만의 여행이 아닌 둘만의 여행은 어떠세요. 키나자매님! 항상 주님의 그늘아래 행복한 가정 이루시길 기도 드립니다.

  • 2007년 10월 12일 오후 3:49

    좋은 추억으로 고이 남기시고..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넘~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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