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용기
서울 여의도 성당 주임신부 김충수/가톨릭다이제스트 2007/09월호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루카14,1.7-14)
동서고금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칭송하고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것이 ‘겸손’이다.
사람을 가장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겸손이며, 사람을 가장 처참하게 만드는 것은 오만이다.
겸손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은 어찌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 같다. 겸손이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여주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 해서 내가 설 자리가 있겠는가.’ 해서다.
그러나 겸손이란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만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진리를 진리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겸손이며, 모든 사람의 인격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것이 겸손이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 사람의 도리를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자기가 스스로 잘났다고 떠들면 인격이건 학문이건 그가 쌓은 모든 것은 초라해지고 만다.
말없이 진실하게 자연의 순리대로 살며, 천륜과 인륜을 지키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인정 받고 사랑 받으며 높임을 받는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만 옳고 자기만 잘났다고 떠들지 않는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을 줄 아는 사람이다.
집회서에 “총명한 사람은 격언의 뜻을 새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귀 기울여 남의 말을 듣는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의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어떤 충격이나 상처를 줄지 늘 세심하게 헤아린다.
또 겸손한 사람은 자기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염려한다. 겸손한 사람은 어린 아이에게서도, 무식한 사람에게서도 진리를 배울 줄 안다.
그러나 겸손은 비굴하게 허리를 굽히고 아부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용기이다. 그래서 용서를 청한다는 것은 비굴한 것이 아니라 용기 있는 겸손의 행위이다.
겸손은 결국 진정한 사랑으로 통하는 문이다. 겸손하지 않으면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겸손한 사람은 참으로 진실한 사람, 죽을 때까지 정의로운 사람, 하느님이 자기의 진실을 알아주리라고 믿는 사람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고, 익은 벼 이삭은 고개를 숙인다. 공부를 많이 할수록 아는 것보다 모르는 분야가 더욱 많음을 느낀다.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던 사람이 죽어도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해가 지며, 그가 없어도 세상 사람들은 그대로 살아간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 절대로 없어서는 안될 것 같은 사람도 반드시 죽고야 만다는 사실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
결국 인간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 거대한 우주 속 한 점 먼지에 불과하다는 사실 앞에 겸허히 무릎을 꿇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