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어느 성당에서 대림특강을 했습니다.
저녁 8시 늦은 시간이었지만, 신자분들이 성전 가득 모이셨습니다. 강의를 시작하며 시흥5동 성당에 다니며, 세례를 받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저를 소개하는 순간 갑자기 울컥 목이 메었습니다. 이런이런.. 예상치 못한 목메임에 당혹하여 마이크를 내려놓았다가, 조용히 저를 기다려주신 신자분들에게 강의를 이어갔습니다. 간혹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왜 인지 주말 내내 생각했습니다.
지난 2008년 12월이었으니, 세례받은지 꼭 2년이 됩니다.
처음 한동안은 좀 더 일찍 세례를 받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2년전 그때가 제게 가장 적절한 때라 생각합니다. 100도가 되어야 물이 끓는 것처럼, 그 때 저는 분명 아주 목마르게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 같아요.
세례는 제 삶의 제일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어떤 눈빛으로 사람들을 만나야하는지를 조금씩 알려주었습니다.
살면서 뭐든지 완벽히 해내야한다는 강박들, 생각만큼 잘 안되면 자책하고 불안해하던 마음, 힘들었던 지난 기억들에 놓여나지 못했던 갇힌 마음들, 이런 모든 것들이 조금씩 가벼워졌습니다.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신앙이란 결국 인생이 아무리 비극적으로 보여도 궁극적으로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키워나가는 것"이란 말은 맞습니다. 신앙은 자신의 부족한 것, 힘들고 고통스런 것들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해주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기 때문이지요.
<믿는다>는 'believe'는 <사랑한다>는 뜻인 고어 'beleven'(벨레벤)에서 나온 것이랍니다.
믿음은 자신의 존재와 삶의 모든 경험을 사랑하는 삶이며, 동시에 다른 사람의 그러함을 공감하고 사랑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란 뜻 아닐지요. 신앙은 어느 날 갑자기 신비로운 무엇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자기 앞에 놓인 모든 상황/사람들과 깊고 넓게 사랑하며 사는 가운데 느끼는 기쁨과 감사가 아닐까요.
미사 중의 "저희가 옛 삶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으로 변화되게 하소서"라는 기도문을 좋아합니다. 신앙은 삶의 가치와 태도를 바꾸어 사는 것이며, 그럴 때 <세상 안에서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는 자유로움과 용기가 서서히 채워진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지요. 사실, 우리의 삶이 언제가 마감되는 유한한 것임을 받아들인다면 지금 우리의 삶, 우리가 숨쉬는 모든 순간은 참으로 특별한 것이지요.
첫 미사하던 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서고 앉고 하는 미사예절이 어리둥절 참 생소했었지요. 그런데 그날 처음 장괘에 무릎을 꿇는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무릎꿇고 양손을 모으는 순간 마구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아주 작다는 것, 그렇게 작은 나 있는 그대로 하느님은 감싸주신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그 무조건의 사랑에 감사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기도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부드러운 감싸음과 어루만짐을 느낄 때면 눈물이 납니다. '눈물은 영혼의 부동액'이라는 어느 시귀처럼 그 순간 제 마음은 가장 맑고 평화로워집니다.
며칠 전의 울컥했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