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글은 요즈음의 교육현장이 너무나도 어지럽고 힘든상황이어서 인터넷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박연수 칼럼] 요즈음의 교육현장에서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진다. 각 시도 교육청의 체벌금지조치 이후 일부학생들은 선생님들이 매를 들지 못하는 것을 이용하여 대들고 반항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한번 때려 보라’는 듯이 불공손한 어투로 빈정거리며 협박까지 한다고 하니 굳이 ‘선생님의 그림자’를 떠올려보는 것은 지나친 사치인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짐을 느낀다.
학교현장에서 비교육적 체벌이 금지된 것은 이미 행해져오던 일이며, 실제로 구타를 포함한 학생체벌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비이성적인 교사의 과잉행동 등이 동영상으로 유포되면서 마치 학교현장이 구타와 체벌로 일그러져있는 것으로 오인 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절대다수의 모든 교사들은 열악하고 힘든 상황을 참아가며 수많은 잡무와 수업준비에 시달리면서도 학생의 상담과 지도에 성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이는 학생과 직접 생활하면서 그들의 고민을 같이 해결해 보지 않고 경험 없이 체득한 이론만을 믿는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상담을 하는 동안 학생의 감정이 교사에게 자연스럽게 이입되며 그런 일치의 정서 속에서 생활하는 대다수의 교사들에게 더 이상의 낙담을 안겨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인권을 존중하자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체벌을 찬성하는 사람은 더욱 없으리라 생각한다. 단지 교육에 있어서 체벌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인식하고 있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신체적 고통을 주어 잘못한 일에 대한 징벌의 차원으로 그치느냐, 아니면 행동교정을 통해서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교육과정으로 이해하느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사회적 현상으로 인한 개인적 행동 결정에 있어서나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의사결정이나 도덕관념의 선택은 각 개인에게 주어지는 자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경험의 재구성’을 통하여 결정하게 된다. 예컨대 장례식장을 많이 다닌 사람은 죽으면 한줌의 재가 되는 것이 인생인데 좀 더 착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관계 속에서 죽음이라는 자극이 생각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교육이 된 것이다.
학생이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하자. 선생님이 화를 내면서 타이르고 또한 믿는다는 확신을 학생에게 심어주고 행동교정을 위하여 엉덩이를 매로 때리는 소위 ‘체벌’이라는 것을 하였다고 하자. 사후처리로 잘 해보자는 격려의 말과 함께 학생의 손을 잡고 포옹을 하고 돌려보냈다. 학생의 눈에서 눈물이 흐를 때 그 눈물이 체벌에 반항하는 눈물일까? 학생의 인권은 유린당한 것일까? 아니다, 학생의 눈물은 선생님에게 실망을 안겨준 자신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며 학생자신을 배려해 주는 선생님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을 갖는 눈물이며 나름대로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눈물이다. 교육이 된 것이다. 후자의 예는 필자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육은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일종의 자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단지 그 자극을 어떻게 활용하며 징벌이 아닌 교정을 목적에 두고 교육적으로 행해지는가이다. 이처럼 자극을 통해서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정신적 자극인 상담에만 모든 것을 거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필요한 육체적 자극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신과 육체는 상호작용에 의해 보다 큰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배가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이 불안할 때 육체를 이완시키는 운동을 통하여 균형을 잡는 것이고 몸이 피곤하고 의욕이 없을 때 조용한 음악이나 독서를 통하여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불안한 마음 때문에 ‘하지마라’는 법률적 속박에서 벗어나 ‘하라’는 자신감 있는 적극적 표현을 써보면 어떨까? 과제물을 해오지 않았을 때나 그 외 제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손바닥을 몇 차례 이하로 길이와 두께가 몇 센티미터 이하로 교육적 목적으로 때릴 때는 체벌이 아니다’라고.
경기도에서는 전국 처음으로 ‘학생인권조례안’이 공포됐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인권 조례 자문단을 구성하고 자문단에서 안을 제출하면 검토하여 시의회에 부의할 계획이며, 서울시도 학생인권조례제정 관련단체가 청구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 조례 제정'을 공표했다. 이 또한 요건을 갖추면 이의신청 등의 과정을 거쳐 교육청의 의견을 첨부하여 시의회에 부의하게 된다.
이쯤 되면 학생인권조례제정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이 명확해 보인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학생인권조례의 상위법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는 체벌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어서 상위법과 상충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있어 그리 간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에는 학교생활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던 것들을 학생들의 인권문제에서 접근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조항들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고무적인 것들이 많이 있다. 특히 강제적인 보충수업이나 야간 자율학습 등은 고등학교의 가장 큰 문제이자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임에 틀림 없었으나 인권차원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원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으므로 쾌도난마(快刀亂麻)임에 틀림 없다.
인권이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최소한의 권리이자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한 권리를 말하는 개념일 것이다. 하지만 교육적으로 가해지는 신체적 자극을 단순한 체벌로 규정하여 인권에 대한 위배의 시각으로 보는 데는 찬성할 수 없다.
인권을 중요시한 서구사회의 교육구조는 철저한 시장주의이다. 흔히 말하는 ‘신자유주의’의 기치아래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공급과 수요에 입각한 철저한 계약의 관계이다. 원칙과 실용이 인간관계를 앞지른다. 교사는 상품을 잘 팔기만하는 점원이며 소유주만이 많은 상품을 팔기위해 자율이 주어진다. 정이 없고 희생이 없다.
반면에 교육에 관한한 우리를 지배해온 사고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이다. 제자가 잘못하면 제자는 물론 스승도 스스로 회초리를 맞는다. 그것을 어느 누구도 폭력이나 체벌이라고 하지 않았고 인권이 침해당했다고 하지 않았다. 문화가 다른 것이다.
장을 담그는데 구더기를 무서워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최소한 우리에게는 진리이다. 작은 부작용을 우려하여 회초리를 버려서는 안된다. 진리는 한때 소외될 수 있으나 결국은 제 자리를 잡고야 만다. 텔레비전을 켜면 나오는 말이 생각이 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인권을 중요시 한다는 서양의 속담도 떠오른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
학교현장에서 비교육적 체벌이 금지된 것은 이미 행해져오던 일이며, 실제로 구타를 포함한 학생체벌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비이성적인 교사의 과잉행동 등이 동영상으로 유포되면서 마치 학교현장이 구타와 체벌로 일그러져있는 것으로 오인 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절대다수의 모든 교사들은 열악하고 힘든 상황을 참아가며 수많은 잡무와 수업준비에 시달리면서도 학생의 상담과 지도에 성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이는 학생과 직접 생활하면서 그들의 고민을 같이 해결해 보지 않고 경험 없이 체득한 이론만을 믿는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상담을 하는 동안 학생의 감정이 교사에게 자연스럽게 이입되며 그런 일치의 정서 속에서 생활하는 대다수의 교사들에게 더 이상의 낙담을 안겨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인권을 존중하자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체벌을 찬성하는 사람은 더욱 없으리라 생각한다. 단지 교육에 있어서 체벌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인식하고 있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신체적 고통을 주어 잘못한 일에 대한 징벌의 차원으로 그치느냐, 아니면 행동교정을 통해서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교육과정으로 이해하느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사회적 현상으로 인한 개인적 행동 결정에 있어서나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의사결정이나 도덕관념의 선택은 각 개인에게 주어지는 자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경험의 재구성’을 통하여 결정하게 된다. 예컨대 장례식장을 많이 다닌 사람은 죽으면 한줌의 재가 되는 것이 인생인데 좀 더 착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관계 속에서 죽음이라는 자극이 생각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교육이 된 것이다.
학생이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하자. 선생님이 화를 내면서 타이르고 또한 믿는다는 확신을 학생에게 심어주고 행동교정을 위하여 엉덩이를 매로 때리는 소위 ‘체벌’이라는 것을 하였다고 하자. 사후처리로 잘 해보자는 격려의 말과 함께 학생의 손을 잡고 포옹을 하고 돌려보냈다. 학생의 눈에서 눈물이 흐를 때 그 눈물이 체벌에 반항하는 눈물일까? 학생의 인권은 유린당한 것일까? 아니다, 학생의 눈물은 선생님에게 실망을 안겨준 자신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며 학생자신을 배려해 주는 선생님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을 갖는 눈물이며 나름대로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눈물이다. 교육이 된 것이다. 후자의 예는 필자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육은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일종의 자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단지 그 자극을 어떻게 활용하며 징벌이 아닌 교정을 목적에 두고 교육적으로 행해지는가이다. 이처럼 자극을 통해서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정신적 자극인 상담에만 모든 것을 거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필요한 육체적 자극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신과 육체는 상호작용에 의해 보다 큰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배가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이 불안할 때 육체를 이완시키는 운동을 통하여 균형을 잡는 것이고 몸이 피곤하고 의욕이 없을 때 조용한 음악이나 독서를 통하여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불안한 마음 때문에 ‘하지마라’는 법률적 속박에서 벗어나 ‘하라’는 자신감 있는 적극적 표현을 써보면 어떨까? 과제물을 해오지 않았을 때나 그 외 제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손바닥을 몇 차례 이하로 길이와 두께가 몇 센티미터 이하로 교육적 목적으로 때릴 때는 체벌이 아니다’라고.
경기도에서는 전국 처음으로 ‘학생인권조례안’이 공포됐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인권 조례 자문단을 구성하고 자문단에서 안을 제출하면 검토하여 시의회에 부의할 계획이며, 서울시도 학생인권조례제정 관련단체가 청구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 조례 제정'을 공표했다. 이 또한 요건을 갖추면 이의신청 등의 과정을 거쳐 교육청의 의견을 첨부하여 시의회에 부의하게 된다.
이쯤 되면 학생인권조례제정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이 명확해 보인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학생인권조례의 상위법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는 체벌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어서 상위법과 상충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있어 그리 간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에는 학교생활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던 것들을 학생들의 인권문제에서 접근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조항들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고무적인 것들이 많이 있다. 특히 강제적인 보충수업이나 야간 자율학습 등은 고등학교의 가장 큰 문제이자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임에 틀림 없었으나 인권차원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원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으므로 쾌도난마(快刀亂麻)임에 틀림 없다.
인권이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최소한의 권리이자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한 권리를 말하는 개념일 것이다. 하지만 교육적으로 가해지는 신체적 자극을 단순한 체벌로 규정하여 인권에 대한 위배의 시각으로 보는 데는 찬성할 수 없다.
인권을 중요시한 서구사회의 교육구조는 철저한 시장주의이다. 흔히 말하는 ‘신자유주의’의 기치아래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공급과 수요에 입각한 철저한 계약의 관계이다. 원칙과 실용이 인간관계를 앞지른다. 교사는 상품을 잘 팔기만하는 점원이며 소유주만이 많은 상품을 팔기위해 자율이 주어진다. 정이 없고 희생이 없다.
반면에 교육에 관한한 우리를 지배해온 사고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이다. 제자가 잘못하면 제자는 물론 스승도 스스로 회초리를 맞는다. 그것을 어느 누구도 폭력이나 체벌이라고 하지 않았고 인권이 침해당했다고 하지 않았다. 문화가 다른 것이다.
장을 담그는데 구더기를 무서워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최소한 우리에게는 진리이다. 작은 부작용을 우려하여 회초리를 버려서는 안된다. 진리는 한때 소외될 수 있으나 결국은 제 자리를 잡고야 만다. 텔레비전을 켜면 나오는 말이 생각이 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인권을 중요시 한다는 서양의 속담도 떠오른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