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터네 집의 토요일 밤 -송현 신부님의 글을 옮겼습니다.-
번즈(B.Burns)의 소설 <코터네 집의 토요일 밤>에 보면 행복한 가정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겸손한 노동자인 아버지가 토요일 밤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는다. 저녁 식사를 함께 나누고 어머니의 설거지가 끝나면 온 가족이 오르간 주위에 둘러선다. 그리고 다같이 성가를 부르고 아버지는 성경을 들어 하느님의 말씀 중에 한 장을 읽는다. 이내 모두 무릎을 꿇고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하며 하루를 감사히 마감한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입니까. 이런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어떻게 가출을 하고 마약을 하겠습니까.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찌 비행 청소년이 되겠습니까.
영국의 역사학자 기번(E. Gibbon)은 그의 유명한 저서 <로마제국의 쇠망사>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했습니다.
“가정은 한 민족과 사회의 척추와 같다. 가정이 무너지면 그 민족과 사화가 무너지고, 가정이 파괴되면 사회가 파괴되고 민족이 멸망하는 법이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줄 알았던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도 결국은 가정 파괴의 무질서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의 이혼율이 40%를 오르내리고 있지만 주일 의무를 지키는 가정 중에 이혼한 가정은 전체 51쌍에서 한 쌍, 곧 2% 이하였습니다. 또한 온 가족이 매일 기도하는 가정 중에 이혼한 가정은 전체 1,011쌍에서 한 쌍, 곧 0.1% 이하라는 놀라운 통계가 나온 바 있습니다. 이는 곧 신앙과 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준 결과 입니다.
나자렛 성가정은 한마디로 예수님을 모신 가정이었습니다. 성가정의 신비는 예수님을 모셨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가정을 본받는다는 것은 각 가정에 예수님을 모시는 일입니다. 여러분도 ‘코터네 집’처럼 행복한 성가정을 이루고 싶습니까. 그러면 오늘부터 주님을 가정 안에 모시도록 하십시오. 저녁마다 촛불을 밝히고 가족들이 둘러 앉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십시오. 생각만 해도 뿌듯하고 행복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지금은 바빠서 그렇게 할 수 없습니까.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분주합니까. 결국 행복한 삶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려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가정 안에 모셔야 합니다. 온 가족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정에 주님을 모시는 비결이요, 가족들이 함께 기도하는 것이 성가정을 이루는 비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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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가정에 예수님을 모신다는 것, 이것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가정에 예수님을 모시라는 뜻은 예수님 상을 가정에 모시라는 말씀은 아닌 듯싶습니다. 매일 가족이 함께 모여 예수님 말씀을 묵상하고, 항상 감사하며 예수님 말씀대로 살아가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앞서 통계를 통해 저희에게 제시해 주셨듯이 주일 의무만 지켜도 이혼율이 현저히 떨어지고 매일 기도하는 가정에서는 이혼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 오늘도 겸손 된 마음으로 항상 감사하고 늘 기도하며 주님의 말씀대로 생활하는 가정이 될 수 있도록 저희를 주님 대전으로 이끌어주소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