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말은 듣지도 말라
-박요한의 ‘행복을 여는 특별한 열쇠’에서 옮긴 글입니다-
바라문교도 한 사람이 하루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 잘 고른 신성한 산양 한 마리를 어깨에 메고 제단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양을 본 세 명의 못된 사람들이 어떻게든 산양을 빼앗아야겠다고 마음먹고는 꾀를 생각해냈다. 그들은 강제로 빼앗는 것이 아니라 유혹해서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몄다. 우선 한 사람이 그 바라문교도 앞에 다가서서 이렇게 말을 걸었다.
“성자여! 제물로는 양을 바쳐야지 어떻게 이 더러운 개를 제물로 드리려 하십니까?”
이 말을 들은 바라문 교도는 펄쩍 뛰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이건 깨끗한 산양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고 길을 가는데 또 한 사람이 다가와서 물었다.
“지금 더러운 개를 제물로 바치려고 하십니까? 깨끗한 양을 제물로 드려야지 더러운 개를 제물로 드리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바라문 교도는 다시 정색을 하고 산양을 내려놓고 말했다.
“보십시오. 이것은 개가 아니라 산양이오.”
조금 더 걸어가노라니 또 한 사람이 다가와서 역시 같은 말로 물었다.
“성자여! 정결한 양을 제물로 바쳐야지 어째서 더러운 개를 바치려 합니까?”
세 번째로 똑같은 말을 듣고 보니 바라문 교도의 눈에 산양이 정말 개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처음 데리고 올 때는 분명 산양이었는데 지금은 개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만 산양을 내버리고 가버렸다.
누군가가 말이란, 간척 사업을 하는데 흙을 부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처음에 흙을 버리면 쓸려 내려가 버린다. 수 백차, 수 천차를 부려도 별로 표가 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수십 만 차, 수백 만 차가 되면 어느새 바다는 땅으로 변해버린다. 즉 말이 인간의 운명에 이렇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말이란 처음에는 그냥 흘러버리는 것 같지만 계속 반복되는 동안 운명을 결정짓는 힘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듣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부정적인 말은 아예 귀를 막고 듣지 말라.
자신을 상하게 하는 말, 열등감을 조장하는 말, 실패를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말, 자신감을 빼앗는 말, 증오를 일어나게 하는 말들을 적극적으로 피하라.
사실이 아님에 불구하고 이런 말들을 자꾸 들으면 사실처럼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당신이 아무리 건강해도 보는 사람마다 “어디 아프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정말 어디가 아프지 않은가 여겨질 것이다.
부정적인 말에 귀를 막아라. 좋은 말, 사랑스러운 말, 격려하는 말, 긍정적인 말, 희망의 말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들어라. 들을 기회가 없으면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면 된다. 매일 자기가 자기에게 좋은 말을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이 생기고 생활에 변화가 올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말을 많이 하라. 말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기 전에 뇌를 통해서 자기에게 먼저 전달되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상황에도 맞지 않은 것 같고, 바보스러운 일 같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반복되는 동안 당신의 인생은 서서히 변해 갈 것이다.
오늘 배우자에게 먼저 이렇게 말해보라.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야. 당신을 만난 것은 행운이야.”
아이들에도 말해보라.
“너희들이 자랑스럽구나. 너희들 때문에 참으로 행복하단다.”
직장 동료들에게도 말해보라.
“나는 당신과 함께 일하게 되어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당신 스스로에게 말해 보라.
“내 앞에는 언제나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언젠가 그렇게 변해 있는 당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