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위 성지로 며칠간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휴가를 내면서 가장 먼저 계획한 일인데, 이번이 세 번째 피정입니다.
이번에도 나홀로 피정이었는데, 시간맞춰 여럿이 함께 가는 피정프로그램은 제겐 쉽지 않은 데다가,
한편으론 홀로 피정이 주는 특별한 느낌을 충분히 누리고 싶어서였습니다.
들판도 나무도 봄 기운이 가득한 이른 아침, 멀리 금강을 바라보며 걷는 시간도 작고 예쁜 뒷동산을
산책하며 분주했던 몸과 마음을 털어내는 시간도 참 소중했습니다. 뒷동산 언덕을 오르며, 하나뿐인
목숨도 내놓을 만큼 간절한 믿음을 가진 앞 세대 순교자들의 마음이 헤아려보려고 했습니다.
그 믿음이 무엇이었을까.
그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 얻고 싶었던 것,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작고 오래된 성당, 아무 치장도 화려한 꽃장식도 없는 소박한 성전에서 동네 어르신 신자분들과 함께 한
미사시간도 말할 수 없이 평온했습니다. 의자가 있었지만, 마음은 그저 마루바닥에 앉아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미사 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느 시인은 그 마음을 '그대에게 엎드려야 한없이 평안한 것을.."이라고 표현했지요.
삼시세끼 밥을 해먹는 것도 시간이 아깝고 번거로워 며칠간 빵, 과일과 커피만을 먹으며 지냈건만 조금도 아쉽지 않았습니다. 피정 때는 잘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포만과 과잉'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알고 사는 일상에서, 잠시라도 먹는 것 입는 것 간소할 때 주어지는 가벼움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늘 뛰듯이 바쁘게 걷던 발걸음도 느려지고, 오로지 내 마음의 흐름을 따라가며 시간에 쫒기지 않고,
고요한 시간을 가졌는데 얼마만이었는지요. 일하느라 오랫동안 이른 아침 서둘러 집을 나서 늦은 시간에
돌아오는 생활에 젖어 살면서 늘 마음 한구석 그리웠던 것은 천천히 먹고 걷고 숨 쉬며 지내는, 하늘도 나무도 나 자신도 충분히 천천히 깊이 바라보는 시간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피정 내내 "주님께서는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하신다"는 시편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찾고 부르지 않으면 하느님은 제게 다가오시지 않는다는 것을요. 내 안에서 하느님을 느끼고 만나는 것은 사랑하며 사는 것이라는 것도요. 흐르듯이 지나가는 삶, 잡으려 해도 잡혀지지 않는 시간의 흐름 안에서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채워가며 '지상에서 천국처럼' 살려면 자신을 사랑하고 또한 서로가 사랑의 마음으로 만나며 사는 것밖엔 없다는 것도요.
피정할 때 늘 그랫듯이 제 곁에서 저를 온전히 품어주는 온화한 기운과 감사의 목메임이 가득해졌습니다. '다 괜챦다' '너 있는 그대로 다 좋다'라며 위로와 사랑의 다독거림을 느끼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조건없는 사랑과 보살핌의 눈길과 손길을 말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