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차이
밥을 먹다가 돌을 씹었다고 생각해보세요.
“뭐야?! 쌀을 어떻게 씻었기에 돌이 있어!”
분명히, 밥을 먹는 사람과 밥을 지은 사람 모두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어?! 돌이 있네?! 역시, 돌보다는 쌀이 맛있다. 하하~”
타인의 실수를 웃어 넘길 수 있는 아량을 가진 사람과 그 주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행복과 불행은 이처럼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위와 똑 같은 상황에서
“야! 이게 뭐야 다~ 돌이잖아?!~”
밥 한 그릇에 어쩌다가 잘못하여 돌이 한 개가 섞였는데,
그것도 지지리 제수 없어 그것을 씹었는데,
“다~ 돌이잖아!” 라고?
다~아 돌!
그럼 쌀은 다 어디에 갔다는 말인가요?
모든 것이 생각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사물을 바라볼 때 모두 편견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 백지 한 장을 펼쳐 들었습니다.
백지 한 가운데는 보일락말락 까만 한 점이 하나 찍혀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눈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모든 학생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입을 모아 대답을 합니다.
“까만 점이요!”
선생님은 “틀렸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무엇이 틀렸을까요? 분명히 백지 위에는 까만 점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사실을 어쩌겠습니까?
학생들은 어리둥절하여 서로 얼굴을 쳐다봅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의아스럽게 바라봅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웃으시며 말씀 하십니다.
“여러분! 맞습니다. 까만 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큰 것을 놓쳤습니다. 까만 점보다 더 큰 것이 하얀 종이 입이다. 여러분은 이 넓은 종이에서 아주 작은 티를 찾으려고 만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 자신을 돌아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상대의 잘못만 탓합니다. 내 이웃에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습니다. 나쁜 사람 보다는 좋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내가 사랑을 베풀면 더 큰 사랑으로 되돌아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사순 시기에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성찰하고 잘못을 통회하고, 고해성사를 통해 보속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마태 7,3-5 / 루카 6,41-42)
주님의 말씀은 성서 안에 살아계십니다. 말씀과 함께하는 사순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작년 가을 함평 국향대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