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마라.
숲 속의 새들이 ‘새들의 왕’을 뽑고 있었습니다. 후보 새들은 돌아가며 유세를 했습니다. 이윽고 꼬리를 치켜세운 공작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며 자신이야말로 새들의 왕이 될 자격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공작보다 예쁜 새는 없었기에 모두 공작을 왕으로 추천했습니다. 그때, 까치가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 잠깐만요, 제가 공직 씨한테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물론 괜찮지, 물어볼게 있으면 물어봐.”
“감사합니다. 공작 씨, 만약 당신이 왕이 된 후 우리가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우리를 보호하겠습니까?”
당황한 공작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새들은 공작을 자신들의 왕으로 뽑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지 의심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공작 대신 독수리를 자신들의 왕으로 뽑았습니다.
누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부나 학식의 정도를 떠나 ‘아름다움’을 비하할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때때로 아름다움만 추구한 나머지 외모로 사람들을 평가하는 실수를 범하곤 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경의와 부러움을 표하고, 소박하고 평범해 보이는 이는 무시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적인 이미지로 그의 교양과 능력, 학식, 성격, 신분 등을 판단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외적인 이미지는 아주 제한적이고 단편적인 정보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것만 가지고는 한 사람을 다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당신도 다음과 같은 황당한 일을 겪을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은 회사 사무실에서 멋지게 차려 입은 사람을 보고, 그가 한 번도 얼굴을 본적 없는 본사 사장인 줄 알고 그를 깍듯이 대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장실에서 평범하게 차려 입은 사람이 나오더니 그에게 “이봐, 차 대기시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요.”
어떤 상황에서도 외모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인생의 중요한 철학입니다. 멋지게 잘 차려 입었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겉 모습은 수수해도 속은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말에 ‘속 빈 강정’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붕어빵 할머니가 초라한 집에 살면서도 평생을 안 먹고 안 쓰고 근검 절약하여 평생을 모은 몇 십억을 불우단체에 기증했다는 기사를 봅니다. 멋쟁이 신사가 빈대떡 집에서 돈이 없어 쩔쩔매는 노래 가사도 있습니다. 어찌 외모로 사람을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이제부터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예수님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헐벗고 병들고 지친 이웃과 친구가 되어주신 분입니다. 나병환자를 고쳐주셨고, 마귀에 시달림을 받는 사람을 마귀로부터 구해 주셨고, 눈먼 소경에게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고, 말 못하는 이의 입을 열어주셨으며,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하시며 치유를 해 주셨습니다. 열두 해 동안 하혈을 하던 여자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써, 치유를 받고 완전하게 하셨으며, 또 죽은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기도 하셨고 죽어 묻힌 지 나흘이나 지난 나자로를 살리시기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지은 여자들을 용서해 주시고, 죄 많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셨고,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온 사람들에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고 하시며 그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외모로 사랑을 나누지 않으셨습니다.
“주님, 저희도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지혜를 주시고, 약하고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