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상관인가? 모든 게 은총인데.."(영화, '어느 시골사제의 일기'에서)
세례를 받은 지 꼭 1년이 됩니다.
지난 여름 예비자교육을 받으러 성당에 처음 발걸음을 하며 느낀 낯설음도,
미사를 드리려 처음 대성전을 들어서면서 느낀 깊은 평온함과 따뜻한 기운도,
기도문을 외우지 못해 매일미사 책 여기저기 뒤적이던 당혹감도 모두
아주 오래 전의 일처럼, 또한 바로 어제 일처럼 느껴집니다.
지난 일년은 제가 살아온 모든 시간을 통틀어서, 어떤 해보다도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폭우가 내린 후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는 물살처럼 빠르고 깊게 내 마음에 가득 채워지는 사랑과 평화로운 기운은 놀라움, 두려움 그리고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운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하는 질문에 휩싸여 답을 찾으려고 책을 읽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신이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낯선 길로 들어선 사람이 낯설음과 호기심으로 길을 물으며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하느님은 최선의 때에 저를 불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매사에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판단하는 것에 익숙한 채 살아온 저에게 하느님은 제가 예기치 못한 어느 순간, 부드럽고 다감한 햇볕처럼 다가와 오만의 투터운 외투를 벗겨주신 것이지요. 자신이 작고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겸손해지고 진실해진다는 것을, 하느님은 인간의 오감과 이성을 넘어선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일년전 제 발길을 성당으로 돌려주신 것도,
힘겨웠던 지난 삶의 순간을 모두 녹여서 순하게 받아들이게 하신 것도,
"너희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주노라"는 기도문에 눈물을 흘리게 해주신 것도,
일하면서 어려운 순간에도 담담하고 여유롭게 잘 넘어가게 해주신 것도 하느님이 제 손을 잡고 계시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제 발걸음을 사랑으로 함께 해주시는 페이스 메이커입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는 말씀,
처음 읽을 때 그저 좋은 구절이다 싶어 줄을 그었던 그 말씀의 의미를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이제 출발선에 선 제 신앙생활에 힘이 되어준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