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노인과 여인』
중미 카리브 해상에 푸에르토리코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의 국립 미술관에는 죄수의 몸으로 아랫도리만 수의를 걸친 노인이 젊은 여자의 젖꼭지를 물고 있는 『노인과 여인』이라는 그림 한 폭이 걸려 있습니다.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늙은 노인과 젊은 여자의 부자유스러운 애정 행각을 그린 이 작품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거나 불쾌한 감정을 나타내곤 합니다.
“이런 해괴망측한 그림이 어떻게 국립미술관의 벽면을 장식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구 망측해라. 무슨 생각으로 이런 그림을 걸어 놓았을까?”
그림 『노인과 여인』의 앞을 지나갈 때면 모두들 한 마디씩 이런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그림에 눈시울을 적시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져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수의를 입은 노인은 바로 젊은 여인의 아버지이며 커다란 젖가슴을 고스란히 드러내 놓고 있는 여인은 노인의 딸입니다. 이 노인은 푸에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였습니다.
독재정권은 그 노인을 체포해 감옥에 넣고는 가장 잔인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그 형벌은 ‘음식물 투입 금지’ 였습니다.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는 노인은 감옥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갔습니다.
어느 날 해산한지 며칠 지나지 않은 딸이 무거운 몸으로 감옥을 찾아왔습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눈은 퀭하고 앙상하게 뼈만 남은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그 딸은 자신이 아버지를 위해 마지막으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젖가슴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젖꼭지를 아버지의 입에 물렸습니다.
그림 『노인과 여인』은 부녀간의 사랑과 헌신, 애국심이 담긴 숭고한 작품으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푸에르토리코 인들은 이『노인과 여인』이란 그림을 민족의 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으로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그들에게 부녀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민족애를 고취 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강한 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부모와 자식간의 끈입니다. 아무리 거친 시련이 닥치더라도 끝끝내 끊어지지 않고 더욱 단단해지는 끈이기도 합니다.
『불경』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남을 얕보지 않는다.’
주위에는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당연한 일임에도 그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면 마음이 아려옵니다.
우리의 부모님께서는 자신보다 자식을 위해 사셨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의 부모님이 내게 한 것처럼 나도 내 자식에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언젠가도 자유게시판에 부모님 효도에 대한 글을 오려드린 일이 생각납니다. 부모님은 우리가 효도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지 않는다고요. 꼭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고 좋은 선물을 가득 안겨드려야만 효도가 아닙니다.
자주 찾아 뵙고, 전화 한 통이라도 자주 드리는 것, 안부를 자주 살피는 것이 효도입니다.
내가 내 부모님께 불효를 하면 내 자식들이 그것을 그대로 보고 배웁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고 말씀 드렸던 일이 생각납니다. 저는 부모님을 일찍 여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을 뵈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저렇게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눈 앞에 부모님 초상화가 아른거립니다.
우리 가사에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은 부모님 공경 잘하면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계명을 지킬 수 있어서 좋구요.
오늘 많은 비가 온다고 하네요. 비 피해 없도록 단도리를 잘해야 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