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길들이면 세상이 변화한다
현명한 사람은 죽는 그날까지 자신을 길들이는 사람입니다. 남을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길들여서 남들에게 맞추는 것이 모든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목표점을 향해 달리지 않으면 아무리 빨리 달려도 이길 수 없고, 싸우는 사람이 상대를 때리지 못하고 허공만 때리면 그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자신은 방치한 채 남을 길들이려고 하는 사람은, 허공을 치는 사람과 같고, 목적 없이 달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흘리는 땀과 노력은 아무런 결과도 없고 열매도 없습니다. 남과 세상은 나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를 길들여서 남에게 맞추고, 나를 세상에 적응시켜야 갈등이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훈계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따질 필요도 없고, 혼낼 필요도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예수의 삶과 죽음은 자신을 길들이는 과정이었습니다. 병사들이 때리는 채찍은 바로 예수 스스로가 자신을 때리는 채찍이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대장장이의 망치 소리는 스스로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못박는 망치소리였습니다. 예수는 스스로 자신을 치고 못박음으로써, 세상에 희망을 심은 것입니다.
사람이 신발을 신고 생활하기 이전 한 왕이 자신의 영토를 순회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땅이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비옥한지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며칠을 맨발로 돌아다니던 왕은 발바닥에 돌이 밟히고, 물집이 생기자 신하들을 모두 불러 모아 한 가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내 영토의 모든 길을 쇠가죽으로 덮도록 하여라. 내가 가는 길은 어디든지 부드러운 가죽 길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 말을 들은 신하들이 그 많은 쇠가죽을 어디서 구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혜로운 신하가 왕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였습니다.
“폐하, 세상의 모든 땅을 쇠가죽으로 덮지 말고, 폐하의 발에 쇠가죽을 입히는 것이 더 나을 듯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신하의 생각을 받아들여 발싸개를 만들게 하였는데 그것이 신발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길을 쇠가죽으로 덮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발을 길들이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에는 납골당이 있습니다. 교회 직원들과 성공회 신부들을 안치하는 곳인데 그곳에 있는 한 주교의 무덤 앞에 다음과 같은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젊었을 때 내게는 자유와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다.
나의 상상력과 꿈은 세상의 어떠한 글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좀더 나이가 들어 인생의 지혜를 갖게 되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땅만이라도 변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황혼에 이르러서는 내 나라를 변화 시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래서 나의 가족만이라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임종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문득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나를 보는 가족들이 변화되었을 텐데,
그리고 가족의 변화를 보고 이 땅의 사람들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 이 나라의 변화를 보고 세상이 변화되었을지 모르는데…….”
‘윌콕스라’는 사람이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웃어라, 그러면 세상 사람도 따라 웃을 것이다.
울어라, 그러면 너 홀로 울게 될 것이다.
기뻐하라. 그러면 사람들이 당신을 찾게 될 것이다.
슬퍼하라. 그러면 사람들이 돌아서서 가버릴 것이다.
잔치를 베풀어라. 그러면 당신의 집은 사람들로 붐빌 것이다.
혼자 먹으라. 그러면 세상 사람들 모두 당신을 지나쳐 갈 것이다.
문제는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신을 변화시키면 변화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변화되면 가족이 변화되고, 이웃이 변화되고, 모든 사람이 변화되고, 세상이 변화됩니다.
세상은 바로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나 자신부터 변화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