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담 풍

2004. 12. 13. 오후 1:43:39

글자
 

  갑자기 거실에서 가벼운 말싸움이 벌어졌다.

  궁금하여 귀를 기울여 보니 애와 눈높이 선생님이 문제의 답을 가지고 토론(?)하고 있었다.

  어쨋든 결론은 선생님의 제시한 답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애는 못내 못마땅한지 궁싯거리는 소리가 안방에까지 들려온다.

  무슨 문제인지 궁금하여 선생님이 가시자 슬쩍 물어보았다.

   “대체 무슨 문제이지?”

  지금 가물가물하지만, 국어 혹은 도덕 문제인 거 같은데 질문은 대충 이러했다.

  그림대회에 출품을 했는데, 우연히 심사위원장이 아버지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교과서적인 정답은 확실하다. 하지만 우리애가 선택한 답지는 엉뚱하게도 ‘심사위원장에게 즉시 연락한다’였다.

  질문과 아이가 선택한 답을 보고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나 역시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위의 눈높이 선생님대로 가르쳤다. 하지만 과연 정답은 무엇인가?

  흔히들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고 한다. 과연 이론과 실제가 다른가? 그런데 이론은 또 무엇인가? 이론이란 것은 현실 즉 실제를 설명하는 바탕이 아닌가! 어떻게 이론과 실제가 다 오른데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분명 무언가 잘못이다. 이론이 틀리든지 혹은 실제가 잘못이든지, 아니면 그 적용이 잘못 되든지 말이다.

  오늘도 교사로서 여전히 나는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는 여전히 심사위원장에게 연락을 하고 있다. 나는 ‘바담 풍’하면서 학생들에게는 ‘바람 풍’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나는 내 자신이 ‘바담 풍’이라고 하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바람 풍’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우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생도 그리고 교사인 나도 ‘바담 풍’이로 말하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누구도 그것을 인정치 않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림절이 시작된 지도 벌써 삼 주가 되어간다. 연례 행사처럼 치르는 판공 고백성사도 얼마 안 남았다. 올해 역시 고백소에 들어가면서 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이론적으로 모든 걸 뉘우치고, 다시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이론과 실제는 다른거야라는 자아합리화의 길을 또 걸어야 하는가! 다른 이가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번 것을 투기라고 비난하면서 내가 한 것은 주님의 은총이라고 감사기도 드리며 간증을 하는 마음으로 보속을 해야할 것인가! 그리하여 이 대림시기에 주님을 열렬히 기다린다고 큰소리로 신앙고백하면서 저 마음 깊은 데서는 주님이 진짜 오시면 어떻게 하나하고 걱정하는 것처럼!!!

  적어도 이 대림절만이라도 내가 ‘바담 풍’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여야겠다. 주님이 진짜 오신다는 것을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여야겠다. 그래야 헤로데처럼 주님을 죽이려는 죄를 덜 범할터이니!!! 

  살아계신 주님, 항상 흔들리는 저를 잡아주시고 봉헌케 하소서! 그리고 이 달콤한 유혹에서 저를 내치지 마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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