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래에 얽힌 추억

2004. 6. 27. 오후 7:38:58

글자

올래에 얽힌 추억

  내 고향 제주도하면 일단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돌·바람·여자가 많다하여 삼다(三多), 도둑·거지· 대문이 없다하여 삼무(三無)의 고향이라는 말일 것이다. 물론 지금은 거의 전설 속에 파묻혀 그 흔적조차 찾기가 여간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내 기억 속에는 그에 관한 추억이 아련히 서려 있다.  이제 그 추억의 단편 중에서 바람과 그것을 이겨내는 올래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끄집어내 본다.
  아다시피 제주도는 광활한 태평양에 위치한, 그리고 주변에 별다른 육지가 없는 글자 그대로 궁벽한 곳에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일년 내내 강한 바람이 섬을 휘몰아치는데 그 바람은 제주도민의 삶을 결정하는 운명과도 같은 실체였다. 아니, 바람과의 싸움이야말로 섬 전체의 생존을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에서 잠시 이야기한 삼다, 삼무라는 말도 결국은 바람과 관련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이겨내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참으로 눈물겨웠고 또한 슬기롭게 극복하여 왔다. 제주의 민속 마을에서  보이는 초가라든지 등에 지는 물허벅(물항아리) 여기저기 성긴 돌담 등등은 모두가 바람과의 싸움에서 얻은 전리품들이다.  
  올래 역시 바람에 대항하여 이겨낸 제주주민의 슬기의 산물 중의 하나다. 올래라는 것은 큰길에서 집의 입구 - 제주도에는 원래 대문이 없고 대신 정낭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 역시 바람을 이겨내기 위한 것으로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한다. 어쨋든 대문이 없으니 집의 입구라고 할 수밖에 없다.-를 이어주는 골목길을 말한다. 하지만 그 길은 육지-제주 사람들은 본토를 이렇게 부른다.-의 보통의 골목과는 다르다.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바람을 이겨내는 지혜의 산물인 것이다. 바로 길의 형태가 그걸 말해 주는데, 올래는 묘하게도  완만한 S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형태야말로  강한 바람이 집안으로 직접 불어들어 가지 않게 한다. 즉 강풍이 S자를 따라 불다 보면 견딜만한 정도의 바람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대문도 없는 집에 강풍이 직접 불어댄다면 집안이 어떤 꼴이 될는지...
  또한 올래는 강풍을 막아주는 것 외에도  집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  굽은 형태로 인하여 큰길에 오가는 사람들은 대문도 없는 그 집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이다. 올래 덕택에 사람들은 대문이 없는 열린 공간에서도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나름의 생활을 할 수 있으니  참으로 놀라운 지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제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다. 모든 분야가 현대화되고 발전을 했다. 그에 따라 바람은 더 이상 사람들의 경계 대상이 되지 못한다. 도회지를 중심으로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고, 없다던 도둑도 극성을 부리고 대문도 생겨났다. 또한 관광객의 내방으로 그들을 위한 유흥 시설도 들어서고 외지인도 늘어 더 이상 이전의 제주도민의 순박한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러나 그 옛날을 전부 지울 수 없는 것, 아직도 도시화의 그늘 곳곳에는 그 흔적을 찾아 볼 수는 있다. 우리 집 역시 그러한 흔적을 간직한 몇 안 되는 곳 중의 하나였다.  우리 집은 도시화, 현대화의 혜택을 덜 받아 여전히 올래 안 쪽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 이전 바람과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었던 훌륭한 유산이 이제는 골치덩어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도시화, 현대화의 부정적 결과로 생겨난  술집에서 왕창 마셔된 취객이 큰길에서 보이지 않는 우리 집 대문가에 와서 실례를 해대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지저분한 것은 고사하고라도 그 찌린내가 종일 진동하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다. 아침마다 모든 식구가 동원되어 청소를 해보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밤새 자켜설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한 올래를 없앨 수는 더더욱 없었다.  참으로 짜증의 연속이었다.
  보다 못해 어느날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대문간에 크게 글씨를 써 놓으셨다. 여전히 순박하시고 인정이 많았던 할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써 놓으시면 사람들이 다 당신의 마음과 같아서 더 이상 실례를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셨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다음날 보기 좋게 깨지고 말았다.  이튿날 올래와 대문은 평소의 배가 넘는 토사와 소변 자국으로 여기저기 진창이 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전날 대문에 써 놓은 할아버지의 글씨였다.
  우리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마당도 구경치 못하시고 그럭저럭 한글을 익히신 평범한 노인네였다. 지금 우리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써 가지만, 당신은 그 옛날의 관습대로 글씨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 놓으셨던 것이다.  
                 ---- 지 금 변 소 ----- 라고!

 

- 옛날 썼던 글을 옮긴 겁니다 -

댓글 1

  • 2004년 7월 16일 오후 6:19

    하하옛날생각납니다 부산과광주를오가는버스회사이름이 대한금속이었는데 제는그버스회사이름을 속금한대 라고말해형이한참못알아듣다 내가잘못읽은것을안형이배꼽잡고웃고놀린적있었는데 그때생각나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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