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인
어렸을 적 - 지금도 나는 젊으므로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 나는 세상이 온통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그 흑과 백의 어느 하나 특히 백인 줄 알았다. 적어도 나 스스로는 백을 향해 나아가는 실체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우리의 삶이란 그래야 한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음에 따라 흑과 백은 그 어는 곳에도 존재치 않으며 회색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나이를 좀더 먹으면 새롭게 흑과 백의 세계를 발견할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 어쩜 삶이란 흑백에서 출발하여 회색으로 그리고 궁극에는 흑백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지금의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흑백 그 어느쪽도 아닌 회색의 묘한 세계이며 나 역시 회색인일 수밖에 없다.
회색은 청탁(淸濁)이 없다. 물론 회색도 색인만큼 옅고 짙음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짙어도 회색이고 엷어도 회색이다. 어차피 회색인 주제에 무슨 청탁이 있음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욕할 수 없듯이...... 회색은 회색이지 결코 흑과 백의 중간일 수는 없다. 회색은 하나의 실체이지 흑과 백을 다 어우르는 그런 것은 아닌 것이다. 회색이 회색임을 부인할 때 우리는 참으로 서글플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여 내 스스로가 회색인임을 부인할 수 있을는지......그건 용기 이전에 현실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잊어야 할 것은 잊어야 하고, 잊혀지지 않아야 할 것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잊어야 할 것은 영영 잊혀지지 않아서, 잊고 싶지 않은 것은 조금씩 기억의 너머로 봄의 아지랑이처럼, 가을 서리처럼 아스란히 사라져 가 나를 괴롭힌다. 그게 회색인의 비애라면 비애이고, 숙명이라면 숙명이다.
하여 잊어야 할 것은 대상이 아니라 잊어야 한다는 내 자신임이라는 말장난같은 고백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곤 그러한 자신을 잊기 위해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추억의 언저리를 맴돈다. 잊혀지는 것은 잊지 않기 위해, 잊혀지지 않는 것은 잊기 위해 오늘도 나는 망각과 기억이라는 추억의 바위를 굴린다. 참으로 서글픈 추억의 현실이다. 그러면서도 결국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 자신도 모르는 뫼비우스의 띠가 되고 만다! 기억? 망각?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내 자신에 대한 자책과 집착! 그것도 아니면 후회?
그건 아마도 내 마음 속에 흑과 백이 공존(共存)한 것이 아니라 회색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리라. 어차피 회색인에게는 후회란 없다! 아니 후회할 권리가 없다. 있다면 내 자신이 흑이나 백 어느 하나일 수 있다면 하는 바램! 하지만 그건 나와 같은 범인들의 이룰 수 없는 망상일 뿐 결코 현실은 아니다. 현실은 우리 인간은, 적어도 나는 회색인이라는 것이다.
회색인의 비애와 운명! 그게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뫼비우스의 띠처럼 나를 헤매이게 한다.
아아! 추억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회색빛 낙엽처럼 이렇게 내 가슴을 쥐어뜯으며, 깊어가는 가을 밤 잠 못이르게 한다. 그리하여 오늘 밤 나는 또다시 나를 잊기 위해 회색인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