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나, 우리는 무엇을 할 때 모든 것을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톨릭의 전반을 알지 못한다. 심지어는 입교한지 얼마 되지 않는 신참교우보다 가톨릭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할 때가 있다. 그래도 나름대로 그럭저럭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어느 성인은 주모경의 내용도 몰랐다지 않은가!
이런 역설을 무기삼아 그 책을 끝까지 독파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나중으로 갈수록 더더욱 혼미해지고 헷갈린다. 어쩔 수 없는 나의 한계이지만 그 와중에 느끼는 게 있어 여기 몇자 적어 본다.
그것은 가난에 관한 내용이다. 물론 이 책에서의 가난은 해방신학의 입장에서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지만, 앞서 이야기한대로 나는 해방신학의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지라,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이 책에 의하면 가난은 비교적 가치 중립적인 용어이고, 그것은 빈궁(貧窮)과 청빈(淸貧)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빈궁은 물질이 결핍된 상태로, 우리로 하여금 속박시키는 실체로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이 해방의 소식임을 인정한다면, 하느님과의 일치를 가로막고 죄의 상태에 빠지게 하는 빈궁은 없어져야 할 사탄과도 같은 존재임을 쉬이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빈궁의 원인을 외적인 측면(종속이론)에서 접근하고 있어 우리의 정서상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으나 어쨌든 추방되어야 할 실재임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빈궁이란 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물질의 결핍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청빈은 능동적인 물질의 나눔을 의미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물질(재화)은 인류가 나누어 쓰기에는 충분하다 한다. 지금 많은 인류가 굶어죽고 있다하나 인류가 생산해내는 농산물은 잉여상태라는 것이다. 소수의 욕심과 그에 따른 부의 편중이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부의 분배가 상당히 어렵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떤 의미와 방법이 있는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예수님의 제자임을 자처하는 우리는 초기 기독인처럼 섬김과 나눔의 자세로 돌아가야 함은 분명하다. 바로 이 정신이 청빈인 것이다. 나눔으로써 나를 가난하게 하고, 노예의 상태인 貧者로 하여금 빠스카의 기쁨을 맛보게 하며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또한 청빈을 통하여 빈자들의 아픔을 공유하며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합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청빈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청빈을 흔히 정신적 요소로 돌리곤 한다. 물질의 과다와 관계없는 정신적 청빈을 강조하는 것은 자기욕심을 합리화시킬 뿐 해결책은 못 된다. 우리가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삶을 흔히들 여유롭게 사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에서 정신적 청빈이라는 자기당착적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들이 우리나라의 실정에 얼마만큼 맞는 것이며, 자본주의 체제하에서(그렇다고 사회주의내지 공산주의가 실패한 작금의 현실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는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한국 교회의 대형화(대형화에 따른 친교의 부재,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신자의 집합체임)를 걱정하고, 성소자와 신자수의 정체(7월달 평화신문 참조)를 우려하는 교회 일각의 예언자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한번쯤은 심각히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 서구 교회의 역사와 현실을 우리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물론 개인적 능력의 부족으로 서구 교회를 직접 돌아볼 기회는 가지지 못했지만, 경험한 분들로부터 혹은 책에서 얻은 짧은 지식에 의하면 서구의 교회는 지금 사양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들의 기저 문화가 기독교에 바탕을 둔지라 여전히 교회는 교회이겠고 기독교는 계속 영향을 발휘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커다란 교회 건물에 예배드리는 이가 백 명이 안 되고, 성직자가 없어 반 공소가 되었으며 교회 운영은 종교세로 운영된다는 말을 접할 때, 그게 우리 한국 교회의 미래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서구의 경우야 기독교적인 문화가 기저에 있으므로 종교세로 운영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경우야 그게 말이라도 꺼낼 수 있겠는가?
물론 지나치게 한국의 교회를 비관할 필요는 없고, 또 근자에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아울러 청빈이라는 요소만 가지고 한국 교회의 지금과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큰 댐도 쥐구멍에서 붕괴하고, 賢者는 여름에 겨울옷을 준비하는 법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죄로부터의 해방되었다는 복음을 전파할 의무가 있는 가톨릭인이라면, 궁핍과 청빈 그리고 가난의 문제를 한번쯤은 새겨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Go-Thomas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오 5장 3절>
이 말씀은 궁핍에서의 해방을 선포하고, 우리 모두 청빈하게 살라는 주님의 계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