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이름을 찾아

2008. 4. 5. 오후 2:54:57

글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인 김춘수 의 '꽃'에서-


  군대 있을 적 묘한 녀석이 있었는데,  그는 항상 우리 고참병들에 말하곤 하였다.

  “고 병장님, 왜 저보고 백상열이라 그래요! 그냥 ‘상열아’ 하면 안 되나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피식 웃으면서 건성으로 지나쳐 고집스럽게  백상열이라고 불렀었다. 하지만 오십을 눈앞에 둔 지금 그놈의 말의 가끔씩 생각이 나고 왜 그런 말을 하였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아니, 늦게나마 놈에게 ‘상열아’라고 불러주지 못한 내 자신을 아주 가끔은 탓해 보곤 한다. 어차피 후회는 부질없는 것이지만....


  언제부터인가 - 정확히는 삼십을 지나면서부터이다 - 그 누구도 나를 형곤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난 형이었고, 선생님이었다. 결혼을 하면서는 여보, 아빠, 아버지, 고서방이라는 거창한 어휘들이 나를 감싸고 나이가 들어 사회 활동에 참여하면서부터는 아저씨, 고부장, 고총무, 분과장, 회장이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호칭들이 마음에 들고 심지어는 흐뭇하기까지 하였다. 진짜 어름이 된 것 같았다. 물론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인간 아니 모든 생명체의 숙명이자 완성을 위한 신의 섭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얻고 이루어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와 비례하여 하나씩 그 무엇을 잃어버리는 과정이라는 것임은 요즈음 들어서 깨닫는다. 그래,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어렸을 적의 꿈과 낭만 그리고 설렘마저 하나하나 내놓다가 결국은 자기 목숨마저 버리고 생명의 본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이렇게 나이가 들면서 잃어버리는 것 중에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내 이름이다. 내가 이름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리라. 하여 어느 날은 아무도 없는 데에서 나 스스로를 불러 보았다. “형곤아!” 하고~~~ 그러나 그 이름은 왠지 낯설고 서먹서먹하게만 느껴졌다. 내 이름이 아닌 것 같았고 아니, 내 이름이 아닐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름이란 타인이 나를 부르는 것이지 내가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 꽃이 스스로를 꽃이라 부름으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꽃이라 부름으로써 비로소 꽃이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와중에 너희들과의 만남에서 오래간만에 ‘형곤이’라는 정겨운 소리를 듣는다. 비록 고향을 떠난 몸으로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카페의 글과 덧글을 통하여 너희들의 따뜻한 목소리를 듣는다. 마음이야 지금 당장 달려가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지만, 고향을 떠난 지금의 내 처지로서는 이렇게 카페의 글로나마 만나고 나의 이름과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도 무척이나 설레고 고마운 일이리라~~~

  사실 난 너희들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물론 학교 졸업 후 나름의 교류를 갖었던 몇몇은 잘 알고 있지만 그 외의 많은 친구들의 얼굴은 나의 기억력의 한계로, 앨범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아도, 글자 그대로 오리무중이다. 여자 친구들의 기억은 더더욱 짙은 안개 속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희순이, 그리고 내 아버지를 알고 있는 혜경이 등에게는 미안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처음 카페에 들어왔을 때 보았던 카페지기 임순이도 미안하지만, 당연히 남자인 줄만 알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무슨 관계가 있으랴!! 그리고 굳이 내가 미안해할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1960년대 같이 학교를 다녔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이름 모르는 야생화로서 의미 있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내 존재의 처음을, 그리고 내가 나의 이름이 고형곤 혹은 고선생님 그리고 아빠나 여보가 아닌 형곤이임을 일깨워 준  너희들에게 다시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카페 가입 후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은, 소풍 가기 전날, 날씨가 궁금하여 매 시간 선잠에서 깨어 하늘을 쳐다 보는 심정이며, 아울러 우리 카페 등급이 올라가기를 바라는 것은, 청군 백군으로 나누어 운동회를 할 때,  내가 속한 청군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유치한 그러나 당시로서는 큰 문제였던 것과 똑같은 나의 마음임을 고백한다.

  다시한번 고맙다는 말과 함께 우리 동창회가 더더욱 번창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좋은 장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2007. 5 .30

                                   친구 형곤(gothomas)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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