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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드뎌
저는 당신을 나의 주님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나의 하느님..
스승의 날..
제게는 스승이 당신 한분뿐이시라는 것을 알아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서
자신의 힘으로만 무엇을 해낸다는
어줍지않은 생각들을 거두어내고
당신께서 가르치신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몇주 내내 말씀하신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그러나 그것은 마냥 부비고 끌어안는 사랑은 아닌 것을..
어린 도혜는 예비자 교리를 받고 있는 학생
제게 대모를 청해왔습니다.
기꺼이 응해주고..
엄마랑 평생 살고 싶다고 했더니
엄마가 화를 내면서
왜 내가 네가 늙을때까지 데리고 살아야하니?
짜증을 부리시더랍니다.
엄마라고 끌어안고 매달리면 왈칵 징그럽다고..
웃음이 나와서 킬킬 웃었습니다.
그 아이의 눈에는 제가 대단해 보이는 지는 몰라도
예수님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해주어야겠지요?
그렇게 혼자 살고 싶으면 수도생활도 생각해보라고
권해주었답니다..ㅎㅎ
저도 모르게 아주 기본적인 교리를 설명해주는데
도혜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우리는 사랑을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엄마 가게에서 닭튀김 집어먹지 말고
청소도 도와드리고 남은 거 먹는게 사랑이지..
엄마 힘드신데 끌어안는게 사랑이냐고?
도혜는 그렇군요..ㅎㅎ
제가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것이 마음에 안듭니다.
도혜같이 맑고 고운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늘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에게 달라고 거지기도하지 말고
스스로를 열라고..미사에 참석하고..
잔소리도 잊지 않았습니다.
도혜는 자신에게 부정적이던 염세들이 하나씩
긍정으로 바뀌는 것만 같다고 기뻐했습니다.
저도 기뻤습니다.
오래 지켜보아온 도혜..
가끔씩 시를 적어 보내오는 도혜..
다친 상처들을 내가 에꾸어 줄 수는 없지만
디디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은 압니다.
울화를 사상에 풀어서
맑시즘에 고개를 들이밀었던 도혜..
맑시즘의 나눔과 그리스도의 나눔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해줄때
그것을 정확하게 알아듣는 명석함이 있는 도혜를
사람들은 왜 미련곰탱이라고 구박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갈고 닦으면 빛이 날 옥석이 될 것이라고
예수님을 누구보다고 사랑하는 사랑스런 도혜가 돨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한분이신 스승님의 가르치심에 저도 놀랐습니다.
이렇게 일취월장한 자신 말입니다.
스스로도 단순해지고 복잡한 가운데서
평화를 찾게 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이제는 믿습니다.
굳게 믿습니다.
당신 가신 길들을 굳게 믿습니다.
수난과 부활을 굳게 믿습니다.
썩어 문드러졌던 제 마음 속에서도 부활이 왔으니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주님..나의 하느님..
인성으로 그 고통들을 이겨내신..예수님..
당신 한자락이라도 닮기를..
거기서 떨어지는 부스럭지라도 줏어서
평화를 누리는 모양입니다..ㅎㅎ
감사드립니다.
아멘
당신께서 주시는 평화
2012. 5. 15. 오후 8:3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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