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사는 삶

2009. 9. 30. 오전 9:52:09

글자

   간혹 자신의 삶을 그다지 만족해하지 않고 불행해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의 특징은 살고 있는 시제가 현재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뿐이라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물론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어느 시간들로부터 지금 살고 있는 현재를 건너뛰어서 미래의 계획에 대한 불안들로 지금이라는 시간을 소모하면서 불행해하곤 하는 것을 본다.

   물론 나도 당연히 지긋지긋하도록 해보았던 일이다. 과거에 어떻게 지냈으며 미래가 어떠해야 한다고 청사진을 그리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과거와 미래가 연결이 되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들은 있다. 고통스러워서, 힘들어서,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그러나 현재는 과거의 결과인 것이고, 현재가 이어져서 미래로 가는 것이니까 현재는 미래의 과거가 되는 것이다. 지금 현재라는 순간을 어떻게 살아내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거기에 전력투구를 한다면 그 시간은 미래로 이어지니, 지금에 충실한 것은 지속적인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이라는 시간은 한 순간인 듯 하지만 참으로 중요한 시간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하게 되지 않는다. 지금 즐겁지 않으면 앞으로도 즐겁게 되지 않는다. 지금 기쁘지 않으면 앞으로도 기쁘게 되지 않는다. 지금이라는 시간에 누릴 수 있어야 앞으로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미래를 차단한 아주 단편적인 사고 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먼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지만,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지금의 순간순간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은 죽기 전까지 충실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되어질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죽는다. 일단 태어나면 죽게 되어있다. 죽지 않기 위하여, 불노초를 찾아 헤매던 진시황도 있었고, 사후의 세계를 꿈꾸던 이집트의 왕들은 시체를 미이라를 만들어 영구보존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박물관에 전시된 시체일 뿐이다. 삶은 죽음으로서 끝을 맺는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일이다. 누구도 죽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죽기 전까지는 살아있는 삶을 최선을 다해서 누리고 기쁘게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그 비결은 지금을 사는 삶인 것 같다. 지금 최선을 다해서 누리고 기쁘면, 그 기쁨은 순간에서 영원으로 지속되어지는 것이다.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예수는 물위를 걸어 다녔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는 시간에 절대적으로 충실하다는 일은 삶 자체를 즐겁게 살아내는 비결이 되어지고, 그것이 인생을 성공적인 과정으로 밟아내는 일이 되어지는 것이다.

   해외에 이민을 간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들은 자신이 이민을 간 시점의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1960년대에 이민을 떠났다면, 그들은 1960년대의 한국문화를 간직하고 이민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1980년대에 이민을 떠난 사람은 1980년대의 서울만을 기억한다. 지금 21세기를 맞아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에 낯설어하는 것을 느끼곤 한다. 누구다 그러하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어느 정도 소외되어 있는 이민자의 생활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과거의 정체된 시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지금은 그들만의 지금이로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금이 모여서 사회를 이룬다. 그 사회 내에서 내는 목소리들이 쟁점을 이루고 정치를 하게하며, 사회문제를 논의한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모든 이들에게 그것들마저 지금이라는 시간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들이다. 과거의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현재의 지금이라는 시각으로 재해석되고 재평가되어진다. 그래서 지금의 변화가 미래를 조망하게 만든다. 그것이 개혁이 되고, 미래를 위한 변화가 되어진다. 

   따라서 개개인이 살아가는 지금들은 누구나에게 최선의 길이며, 최고의 길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길이며, 자신에게 가장 충실한 길이다. 과거도 현재의 눈으로 해석되는 현상일 뿐이며, 미래도 현재의 눈으로 조망되는 예측일 뿐이다. 현재라는 시제를 잃고서 과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회 내에서 스스로 고통만을 자초할 뿐이며, 스스로의 허위의식을 자초하는 것 뿐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는 현재의 눈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시간이며, 미래 역시 현재의 눈으로 내다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혹할 정도로 현재와 현실이 절대라고 생각하다보면, 과거에의 연민들과 미래에 대한 불안들이 잠든다. 과거와 미래는 그 후에 천천히 다가와도 늦지 않은 시제들이다. 그저 지금 현재 이 시간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삶을 깔끔하면서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일이다. 현명한 지혜라는 것은 안정된 현재가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니까 말이다.

댓글 4

  • 2009년 9월 30일 오전 11:12

    지금의 삶에 자족하며 사는 것이 제일 행복한거죠.

  • 2009년 9월 30일 오후 3:05

    오늘 시어머니와 대화중에 미래의 걱정보다는 지금 현재의 나의행복을 찾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하시더군요.말씀인 즉!넘 신랑이랑 떨어져 지내지 말라라는 말씀! 자식들의 미래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부부간의 행복이 우선이라시시면서....조금도 더 많이 기도해야겠어요.

  • 2009년 9월 30일 오후 5:47

    마지막 말씀이 가슴에 닿네요. 현명한 지혜는 안정된 현재에서 비롯된다..

  • 2009년 9월 30일 오후 8:12

    Seize the day! 저희 공동체가 어둔 터널을 통과하고 있을때 저희를 찾아와 용기를 주셨던 신부님의 강론말씀 '현재를 살라, 오늘 이 순간을 살라' 이 생각납니다

│ 이 │이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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