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조금 담담해졌지만 처음으로 학교에 부임했을때 학생들에게 대한 마음은 설레임과 두려움이 반이었고, 사랑으로 대해야겠다는 마음이 반이었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공학과도 아닌 간호과에 소속되어 있었고, 전체 학과의 교직반을 담당해야 하니 학생들과 일일이 접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중 처음으로 맞딱드린 학생은 규일이였다.
규일이는 내 연구실의 근로학생이었다. 데면데면한 내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규일이 역시 데면데면했다. 우리는 청소도 같이 하고 가끔 나더러 떡볶이나 군고구마 같은 것을 먹어보라고 내밀면 함께 먹기도 했었다. 솔직히 성적에 그렇게 많은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중상위권 정도의 성적의 학생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규일이는 야간반 학생이었다.
야간반 학생들에게는 조금 억울한 꼬리표들이 따라다녔다. 주간반보다 공부를 못한다는.. 그러나 규일이는 어떠한 상황에도 자존감이 높은 아이였다. 그저 성적을 5%정도 올려보라는 이야기외에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그 아이를 지켜보아준 것이 내가 한 일의 다였던 것 같았다. 그렇게 한 학기를 서로 마찰없이 지냈다.
다음 학기 개강 첫날 규일이는 연구실로 뛰어들어와 외쳤다. “교수님 저 한번만 안아주셔요. 저 일등했어요.” 글쎄.. 안아는 주겠는데 일등이라니.. 나 역시 어안이 벙벙했다. 야간반 학생이 일등을 했다는 것은 전체 학과의 화제가 되었고 그 학생은 자신의 긍정적인 구석들이 인정받았다는 것 때문에 자신을 얻은 것이었던 것이다. 내가 시험을 본 것도 아니었고, 내가 성적을 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채로 어안이 벙벙한 상황들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 후로 나는 규일이가 계속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으면서 남은 학교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아이의 잠재되어 있던 능력은 무궁무진했다. 정말로 사람을 살려내고 키워낸다는 일의 신비와 환희에 온 몸과 마음으로 전율이 일었다. 규일이는 반대표도 했고, 여러모로 활동적이고 우수한 학생생활을 마치고 졸업을 하였다. 졸업한 규일이는 나를 대모로 세워서 영세까지 받았다. 나는 속으로 걱정하였다. 이런 역할을 할 자격이 있는지..내가.. 그러나 적어도 기댈 어깨가 필요한 한 어깨를 빌려주기로 마음 먹었다.
자주 못찾아 뵈어서 미안해하는 규일이에게 나는 괜찮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지금은 바쁜채 네 생활을 하지만 내가 정년퇴직하고 할 일 없이 지낼때 가끔씩 연락하고 지내라고 부탁을 하곤 했었다.
연락이 뜸해진 것은 규일이가 결혼을 하고 나서였다. 그 아이가 어떤 상황을 못헤쳐 나갈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보수적이지만 자유롭고, 여리지만 강한 아이이다. 최근에 출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자가 왔다. “저 교수님 잊고 있는 것 아니예요.” 번호 만으로는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규일이라는 것을 나는 직감으로 안다. 정말로 내가 정년퇴직하면 아이 데리고 찾아올 아이라는 것도..
처음 학교라는 곳을 원할 때부터 나는 정말로 학생들과 잘 지내기를 원했다. 그러나 전공도 취업도 지원해주지 못하는 나의 입장을 현실적인 학생들은 너무나 잘 파악하고 알아서 대해준다. 조금은 서운해도 그러려니 생각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규일이 같은 학생들이 간간이 있어서 마음이 젖어들기도 하는 것은 이 직장에서 견디는 활력이고 힘이 되어준다.
나더러 고맙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사실은 내가 고맙다. 규일아 잘 살아줘서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