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진은 제 어린시절입니다.
옆에는 오빠 그리고 오른쪽은 언니 가운데 앉은 꼬마가 저이지요.
청파동 집에서 삼십육년을 살았는데 어린시절은 그 집에 묻혀 있습니다.
아마도 거의 오십년 전의 사진이겠지요..ㅎ
누구에게나 형제와 자매는 남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배우기 시작하는 관계이면서
서로에게 어떻게 대해야 잘 지내는지를 배우는 관계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사회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맺어야 서로 공존하는가를 처음으로 배워나가는 것이
형제 자매로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부모와는 달리 혈육이면서도 친구는 아닌 서열이 있고
또 그러나 조금은 다른 이질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알아가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부모이기 때문에 접고 들어가시는 영역이 있지만 형제 자매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조그마한 것들이 있다는 것 때문에 관계의 불편함과 감수함들을 배워나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딸 많은 집 세째딸은 보지도 않고 며느리로 데려간다'는 옛말은 그런 관계 속에서
살아남은 이가 익혀나가야 하는 사회성을 배웠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개성이 강한 나의 형제 자매들..때로는 자랑도 되어주지만 때로는 스트레스도 되어줍니다.
한없이 바라고 기댈 수는 없는 관계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이 오십을 먹고서 하는 이야기 치고는 좀 유치한가요?
하지만 그런 조그마한 깔끄러운 구석에 대하여 접고 넘어서는 깊이는
누구의 삶에서나 있게 마련이고 내 존재가 다른 형제 자매에게 나중에 짐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에 자신에게 때로는 엄격하고 가혹한 외로움을 감수하도록 요구합니다.
그래도 어린 시절을 함께 공유했다는 추억이 남아있다는 것
그리고 정이 들어있다는 기억은 조금 더 가까운 사람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이웃을 형제 자매처럼 여기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그채로 스스로의 외로움에 숨이 막히기도 하지만
일단 하느님 앞에 홀로 선 자신이 신앙의 기본 전제라는 것..그 다음에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단 것을
알고나서는 그 외로움들이 그렇게 갑갑하게만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길들어가나봅니다.
형제와 자매를 사랑한다는 것이 이렇게 여러가지 전제들을 포함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채로 삶 앞에서 고개를 숙입니다..그렇게 살아오신 나이드신 분들 앞에서도 고개를 숙입니다.
견뎌오신 세월 앞에서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