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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억울한 죽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왜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지,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순교자들이라고 교회에서 축일을 지내지만,
이 아기들이 무엇을 알았던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라헬이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는
예레미야서의 인용 구절은, 이 아기들의 죽음을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신비라고 해야 할 이 사건의 의미에 대해 단정 짓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이 사건은, 헤로데가 틀렸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헤로데는 “유다인들의 임금”(마태 2,2)이라는 한마디에 매몰됩니다.
그에게 “유다인들의 임금”은 자신을 위협하는 인물이었고,
경쟁자를 허락하지 않는 권력의 본성 때문에
아기들을 죽이는 방법으로 대처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을 없애지는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죄한 아기들을 대신 죽게 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헤로데가 생각한 것과 다른 분이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기에(요한 18,36 참조)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권력의 논리라는 틀 안에 들어가지 않으십니다.
무죄한 아기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한 헤로데에게 희생되었습니다.
실상 이 세상의 수많은 순교자들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권력자들에게 무참히 희생된 것이었지요.
요즈음에도 무수한 아기들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헤로데 군인들에 의해서 살해되는 것이 아니라, 비정한 어머니
아버지들 손에 낙태되어 살해되고 있다는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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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Agnus dei / Hayd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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