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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인간 사회와 격리된 광야에서 단식하며
고행을 하던 세례자 요한은 마귀가 들렸다고 험담하며 배격하였고,
모든 계층의 사람과 친교를 나누시며 죄인들과도 어울려 먹고 마시는
예수님은 도덕적으로 방탕한 생활을 한다고 배척하였습니다.
그런데 군중이 세례자 요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
그가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기 때문이었을까요?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과연 예수님께서 먹보요 술꾼이시기 때문이었을까요?
요한이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내용은 회개하고
죄의 용서를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전하는 분이 광야에서 단식을 하는 사람이든
도시에서 보통 생활을 하는 사람이든 무슨 차이가 있었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누가 어떤 환경에서 말하든 관계없이 진리는 진리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거북해서 여러 가지 핑계와 구실을 대가면서
그 사람에게서 생트집을 잡으려는 것이며,
결국 문제의 핵심은 회개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진리의 말씀을 듣는 것조차 원하지 않거나 진리의 편에
서는 것을 거절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변명과 구실을 내걸 수 있지만,
대부분 그 변명에는 설득력이 없고 그저 반대를 위한 논거에 불과합니다.
장터에서 놀이하는 아이들의 비유 말씀에 등장하는 아이들처럼,
이래도 아니요, 저래도 아니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물론이고,
반대하기로 작심한 사람에게 진리와 논리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뿐 아니라 인간 생활에서도 완고한 외고집과 편견은 금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를 맞이하여 깎아지른 듯한
외고집과 변덕이 심한 울퉁불퉁한 길을 평탄하게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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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주님의 마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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