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새로운 생명과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라고 촉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행복과 네 가지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지상에 머물고 있는 우리가,
천상의 것들만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요?
또한 가난한 사람들도 도와주고 착한 일도 조금 하면서,
어느 정도의 재산을 소유하여 웃으며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지금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는 사람은 불행하다는
예수님 말씀은 그저 낯설기만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의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에서 가장 길게
서술되어 있는 마지막 부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 웃는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말씀하신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이 복음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바른말을 하는 사람을 박해한다면,
더욱이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을 모욕하고 중상하는 그런 세상이라면,
그러한 세상의 논리와 셈법에 따라 동조하면서 진실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은 채, 눈앞의 편안함만을 찾고 거기에 만족하면서 안주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겠지요. 콜로새서의 말씀을 인용한다면 이들은
“저 위에 있는 것을” 무시하고 “현세적인 것들”에만
관심을 두고 머무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관심과 사고와 운신의 폭이 오로지
나와 내 집안뿐이고, 그나마 현세적 행복에만 머무는 사람은
하느님을 만나 뵈어야 할 순간이 다가올수록 예수님의
불행 선언에 담긴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 위에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더 높은 이상과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세상이 손가락질하면서 거부하거나 박해를 하더라도,
그래서 울고 불행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야말로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
-출처 매일 미사-
♬ 행복하여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