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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교 묵시 문학에서 ‘신비’는 처음부터 하느님께서 갖고 계시지만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져 있는 인간 역사의 계획을 가리킵니다.
한편 헬레니즘 시대에 널리 퍼져 있던 신비 종교에서는 ‘신비’가
그 종교에 입문한 이들에게만 전해지는 은밀한 가르침을 지칭하는데,
그 가르침을 전수받은 이들은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신비’는 이 두 가지 전통의 영향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비는 감추어진 채로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납니다. 그래서 콜로새서는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라고 선언합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그리스도에게서 절정에 이르는데,
그분께서 오심으로써 이제 그 신비가 우리에게 계시되었으며,
그분 안에서 우리는 완성의 희망을 품게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에 덧붙여 콜로새서는, 그 신비를 전하는 교회의 일꾼이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자신의 육신으로 채우고 있다고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기 시작한 하느님의 계획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그 지체인 우리 신자들이 해야 할 수고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넓은 전망 안에서 살펴볼 때, 아직 하느님의 계획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겪어야 하는 고통과 수고와 환난은
태초부터 종말에 이르는 하느님의 ‘신비’ 안에서 그 의미를 갖습니다.
인간에게 계시는 되었지만 인간이 아직 온전히 알 수 없는 것이
신비의 특성이라면, 그 수고의 의미는 종말에 가서야
비로소 충분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보다 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분명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율법주의, 근본주의를 경계해야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근거로 규정과 법규를 자기에게 편리하고
유리하게 마음대로 해석하려는 유혹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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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주님의 마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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