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무조건적인 ,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

2007. 1. 27. 오후 10:53:51

글자

January 28, 2007, 4th Sunday Ordinary Time
1st Reading: Jeremiah 1:4-5, 17-19, Responsorial: Psalm 71, 2nd Reading: 1 Corinthians 12:31-13:13, Gospel: Luke 4:21-30

2007
1 28 일요일, 연중 4 주일
1 독서: 예레미야서 1:4-5, 17-19, 화답송: 시편 71, 2 독서: 코린토 1 12:31-13:13, 복음: 루카 4:21-30


BLIND, UNREQUITED LOVE
"There is no limit to love's forbearance, to its trust, its hope, its power to endure." — 1 Corinthians 13:7

무조건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 코린 13:7


It's common for Scripture to talk about having faith without seeing. We talk about "blind faith" and the leap of faith. "Faith is confident assurance concerning what we hope for, and conviction about things we do not see" (Heb 11:1). "We walk by faith, not by sight" (2 Cor 5:7). The centurion had so much faith in Jesus' word of command that he didn't need to see Jesus give the order to heal his servant (Lk 7:8, 10).
성경은 보지 않고도 믿음을 갖는 것에 대해 자주 강조합니다. “맹목적 믿음 믿음의 도약을 말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히브 11:1). “우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2코린 5:7). 백인(百人)대장은 예수님 말씀을 워낙 충실히 믿었기에 예수님께서 자기 하인의 치유를 명하시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루카 7:8, 10).

Scripture also talks about having hope without seeing. "Hope is not hope if its object is seen; how is it possible for one to hope for what he sees? And hoping for what we cannot see means awaiting it with patient endurance" (Rm 8:24-25). Abraham hoped "against hope" (Rm 4:18), though he could not see how God would give him a great inheritance (Heb 11:8ff).
성경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도 강조합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로마 8:24-25). 상속재산을 약속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수긍할 없었던 아브라함이었지만 (히브 11:8 이하), 그는희망이 없어도희망하였습니다. (로마 4:18).

We also have examples of love without seeing or "blind love" in Scripture: the "patient" (1 Cor 13:4) love of a parent for a wayward, departed child (Lk 15:13, 20), the ferocious, faithful love of Mary Magdalene for the dead and buried Jesus (Jn 20:15), and God's love for u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Rm 5:8). However, the world doesn't recommend love without seeing; instead it tells us to "love the one you're with," as the song goes. Are you called to pour out your heart in unseeing, unrequited love? Ask Jesus to pour out His love in your heart (Rm 5:5). Blind love is greater than blind faith and blind hope (1 Cor 13:13). There is no limit to the power of your unrequited love to endure (1 Cor 13:7). 

우리는 보지 못함에도 사랑하는, 맹목적 사랑 예를 성경에서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제멋대로 굴다가 이미 남처럼 자식을참고 기다리는” (1코린 13:4) 아버지의 사랑 (루카 15:13, 20), 죽어서 묻히신 예수님을 향한 마리아 막달레나의 엄청난 신앙적 사랑 (요한 20:15), 아직 죄인이던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로마 5:8)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하는 대신, 노래 가사처럼함께 하는 사람을 사랑하라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사랑,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에 여러분의 마음이 부어지도록 불림 받지 않았다면, 마음에 하느님의 사랑이 부어지도록 예수님께 청하십시오 (로마 5:5). 맹목적 사랑은 맹목적 믿음이나 맹목적 희망보다 것입니다 (1코린 13:13). 무조건적인 우리사랑의 힘은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1코린 13:7).

 

★★★
the leap of faith   일반적인믿음의 도약이란 뜻이라면 A leap of faith 라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 부정관사를 썼을 것이라는 거죠. 하지만 여기서는 분명히 정관사 the 써서,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그의 실존주의를 일부 계승한 바르트(Karl Barth) 언급한 바로 믿음의 도약(the leap of faith)”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들의 견해는 흔히위로부터의 신학이라 해서, 초월자의 진리를 우리 인간이 있으려면, 더군다나 객관적 증명, 이성적 논증이 불가능한(키에르케고르) 하느님 섭리를 우리가 받아들이려면 필요한 것이 바로신앙의 도약(leap of faith)” 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적 신학에 반하는 실존주의적, 철학적 신학이라고도 있습니다. Mary Magdalene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복음서에서일곱 마귀가 나간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루가 8,2) 묘사되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밑에 있었으며(요한 19,25),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일요일 이른 아침에 먼저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마르 16,9),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을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린 사람도 그녀이다(요한 20,11-18). 복음서에 언급된 다른 마리아는용서받은 많은 여자”(루가 7,36-50) 성녀 마르타(Martha, 7 29) 동생인 베타니아의 마리아, 그리고 클레오파(Cleophas) 아내 마리아(4 9) 있으나, 위의 많은 여자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서방교회의 전승에서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를용서받은 많은 여자 보고 통회와 관상의 이상적인 모델로 믿어왔다. 중세 시대에 있었던 3명의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 속에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가 사도 요한(Joannes) 약혼한 사이였다고도 한다. 성령 강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성모님과 요한과 함께 에페수스(Ephesus) 가서 전교하다가 그곳에 묻혔다고 전해옵니다.

★★★

 

 

 

 

 

* 이 짧은 묵상글은 "영어로 만나는 오마이 갓" 으로부터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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