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영생을 위해 죽는다는 것

2007. 1. 21. 오전 1:43:46

글자

Friday, January 19, 2007
First Reading: Hebrews 8:6-13 Responsorial Psalm: Psalm 85 Gospel: Mark 3:13-19

2007 1 19
연중 2주간 금요일
1독서: 히브리 8:6-13 화답 : 시편 85 복음: 마르코 3:13-19


DYING TO LIVE
"He named twelve as His companions whom He would send to preach the good news; they were likewise to have authority to expel demons." —Mark 3:14-15

영생을 위해 죽는다는
그분께서는 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마르코 3:14-15

Tomorrow we begin a series of celebrations of those who suffered bloody martyrdoms for Jesus. Saints Fabian, Sebastian, Agnes, and Vincent followed in Jesus' footsteps, choosing to be killed rather than kill. This weekend we also recall the most disastrous judicial decision in American history, the legalizing of abortion in the United States on January 22, 1973. At this moment, the Lord challenges us to choose life (Dt 30:19-20).


내일부터 우리 교회는 예수님을 위해 피를 흘리며 순교의 고통을 겪으셨던 분들을 위해 일련의 추모를 시작하게 됩니다.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선택하심으로써 파비아노, 세바스티아노, 성녀 아녜스 그리고 빈첸시오 같은 성인성녀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또한 이번 주말은 바로 미국 역사상 가장 불행한 판결이 내렸던 날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로 1973 1 22자로 미국이낙태 합법화하였던 것입니다. 순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신명 30:19-20).

However, to choose life for others we must choose death for ourselves. Jesus chose to die so that we, once His enemies, could live and become His friends (Jn 15:14, 15). We must choose to die to self so others can live, to be transformed from death-dealing to self-dying.

하지만 타인을 위한 삶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바로 우리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죽음을 선택하셨기에 분의 적이었던 우리 인간들이 있었고 분의 친구가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 15:14, 15). 우리도 타인이 있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이는 남에게 죽음을 초래하는 현실로부터 스스로 죽음을 맞는 쪽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At least half the apostles were into violence, hatred, and murder. Peter attacked Malchus with a sword (Jn 18:10). John and James wanted to burn a city of Samaritans (Lk 9:54). Bartholomew (Nathanael) was a bigot (Jn 1:46). Matthew the tax collector probably used extortion to help him collect taxes. Simon the Zealot was a member of a violent, revolutionary group. (Today we would call them terrorists.) Nonetheless, Jesus changed these violent people. He will change us, if we're willing to die to ourselves and repent, so that others may live.

 

적어도 사도들의 절반이 폭력과 증오 그리고 살인에 빠져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말코를 칼로 공격했습니다 (요한 18:10). 요한과 야고보는 사마리아인들의 도시를 불살라버리기를 원했습니다 (루카 9:54). 바르톨로메오(나타나엘) 고집불통이었습니다 (요한 1:46). 세리였던 마태오는 아마도 세금을 거두는데 일조하고자 강탈이라는 방법을 이용했을 것입니다. 시몬은 과격한 혁명파 당원의 일원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릅니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이런 폭군들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진정 자기를 버리고 회개하기를 바란다면, 분은 우리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리하여 타인이 살게 것입니다.

 

★★★
martyrdoms
순교, 순난, 수난, 고통
judicial
사법의, 재판의; 법관[판사], 재판관의, 재판에 의한
die to self   “
죽다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를 버리다. 실존을 내던지다 . 쉬운 단어로 이뤄진 숙어인데도 한국사람들에게는 뜻이 금방 닿지 않는 표현중의 하나입니다. 본토인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니 암기하시면 좋을 같습니다.
death-dealing
죽음을 초래하는, 치명적인, 치사의
extortion
강요, [](관리의) 직무상의 부당 취득, 재물 강요() 《금전유가물의》
bigot
완고한 편견자 (偏見者); 고집쟁이, 고집통이
Zealot [
유대교]열심당원(熱心黨員) 《기원전 1세기에 활약한 정치적종교적 과격파; 로마군에 저항함》
would call  
자칫 습관, 반복의 would 잘못 이해할 있습니다. (, used to 아류의 조동사로 오해 가능) 하지만 여기서는 If they were alive today, we would call them terrorists. 라는 . 가정법 과거.

★★★

 

 

 

 

* 이 짧은 묵상글은 "영어로 만나는 오마이 갓" 으로부터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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