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해설] 18. 물 위를 걸으신 기적

2005. 8. 2. 오전 8:19:20

글자

18. 물 위를 걸으신 기적 (마태 14, 22-33)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 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 보내셨다. 군중을 돌려 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20)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밤 사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였다. 그들은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베드로는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미시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해설] 예수께서는 성령의 감도를 받아 당신 제자들에게 깊은 이해능력을 심어주기 위해 이 기회를 활용하셨다. 복음은 가르침이라기 보다 전달에 가깝다. 우리는 구약을 통해 폭풍 속에서, 지진 속에서, 불길 속에서 이루어는 엘리야와 하느님과의 만남에 관해 알고 있다. 폭풍은 바위를 박살내고 물건들을 집어던지고 온갖 것을 날려 버린다. 지진은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을 뒤흔든다. 불길은 우리가 가능하면 빨리 도망쳐 멀어져야 하는 무엇이다. 폭풍과 지진은 바깥에서 몰아치는 반대를 상징한다. 불길은 내적인 유혹을 나타내는 표상이다. 그러니까 폭풍과 지진과 불길은 영적 여정에서 우리를 덮치는 난관과 시련들인 셈이다.

 

배 안에서 바람과 파도에 얻어맞고 강타 당하는 제자들은 갖가지 종류의 반대에 맞서며 복음에 순종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나면 기도와 묵상은 천상의 기쁨에 이르는그리고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경제적인 성공까지도 제공하는요술 양탄자를 보장해 주리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제자는 비바람과 파도에 휘말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도무지 빠져 나갈 구멍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폭풍의 와중에 한 사람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캄캄한 밤중 더구나 새벽 세 시에 눈앞에 허연 물체가 물 위에서 어른거린다면 우리는 쉽게 허깨비를 보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유령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신다. 그분은 폭풍 한 가운데, 바람 한 가운데, 파도 한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뜻한다. 베드로는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 다가오라는 말을 듣는다. 바꾸어 말해서 베드로는 반대와 실망 속에서 신앙의 팔을 내뻗어 예수를 붙들도록 부름 받는다.

 

베드로는, 비바람은 반대와 유혹 속에서 당신을 발견하도록 초대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신앙으로 감지하는 사람들의 상징이다. 우리 내부나 외부에서 오는 시련들 속에서 하느님을 뵙고자 노력하는 첫 시도가 성공하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좋다. 처음 몇 차례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가라앉기 시작할 때 해야 할 일은 도움을 청하는 것 뿐이며, 그러면 하느님은 시련의 강도를 완화하여 우리가 짤막하게나마 휴식을 취하고 다시 노력할 수 있게 하신다. 사도들에게는 이는 바로 예수의 십자가 수난이었고, 그때 그들은 모두 가라앉았다. 시련은 늘 견디기 불가능한 상황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런 시련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만 사정이 너무나 혹독하다. 우리의 믿음과 신뢰는 시들고, 그러면서 우리는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럴 때 도움을 청하면 예수께서 구해 주신다. 그러고 나서 잠시 고요가 찾아든다. 우리가 여행을 계속 하려고 하면 바람과 파도가 다시 일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또다시 어려운 난관 속에서 예수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다시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분은 우리를 끌어올려 주신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거치는 영적 여정이다. 우리는 폭풍과 지진과 불길 속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목소리를 조금씩 들을 수 있게 된다. 하느님은 시련 속에 숨어 계신다. 만일 우리가 거기에서 그분을 발견할 수 있다면 다시는 그분을 잃는 일이 없을 것이다. 시련이 없으면 하느님 자비의 힘과 그분이 우리 각자를 위해 예비해 두신 엄청난 운명을 알 수가 없다. 실패를 참아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물가로 나가서 주저않지 않는 한 언제나 또다른 기회가 있기 마련이다. 위험이 없는 상황이야말로 가장 큰 위험이다. 바람과 파도를 만나는 것은 패배의 표지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가는 요령, 즉 하느님의 활동에 몸을 맡기고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상관없이 그분의 사랑을 믿는 요령을 터득케 하는 일종의 훈련이다. 예수님은 나날의 삶 속에서 그리고 도저히 하느님을 찾을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한없는 관심을 감지할 수 있는가를 표양으로 보여주셨고, 베드로의 응답은 물 위를 걷는 것으로, 이는 일상생활의 시련과 부침 속에서도 평화를 유지하는 마음가짐을 상징한다. 베드로가 신임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배 안에 머물러 있는 동안 크나큰 모험을 감행했을 뿐만 아니라 바람과 파도가 덮쳐왔을 때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에 대해서도 신임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영적 여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어떤 모험도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우리는 영적 여정을 천상의 기쁨을 향해 날아오르는 마술 양탄자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영적여정은 오히려 거짓된 자아에 가해지는 굴욕에 가깝다. 예수께서 첫 제자들을 양성하실 때에도 그러셨고 그분과 같은 시대에 살앗던 제자들도 그랬듯이 노력하고 실패하고 다시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제자라고 말할 수 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